2016년 6월 24일 금요일

'미쳤다는 건 칭찬이다' 서평

재밌는 창업 관련 책을 읽었고 서평을 한국경제신문에 실었다. (광파리)

창업자들을 만나다 보면 ‘이 사람 제대로 미쳤구나?’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주위의 만류도 뿌리치고  잘나가는 직장 그만두고 뭔가를 확 바꿔 보겠다며 열정을 불사르는 창업자, 자기가 혁신하려는 분야 얘기가 나오면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창업자… 이런 창업자가 이끄는 스타트업(초기 창업기업)이라면 ‘묻지마 투자'도 하고 싶어진다.

이런 창업자에겐 “미쳤다”는 말은 욕이 아니라 칭찬이다.

한국경제신문사가 ‘미쳤다는 건 칭찬이다'란 제목의 책을 냈다. 창업자들이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혁신에 성공하려면 단계별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제 사례를 곁들여 설명한 책이다. 분량이 400쪽이 넘지만 무협지처럼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저자는 혁신적인 창업자들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인데버(Endeavor) 공동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린다 로텐버그다. 린다는 하버드대를 거쳐 예일대 로스쿨에 입학했으나 ‘앙트러프레너십(기업가정신)’에 푹 빠져 학교를 그만뒀다. 인데버를 설립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는 극구 만류했고, 린다는 눈물을 흘리며 거역했다.

저자는 인데버 설립 후 ‘미쳤다'고 할 만한 창업자들을 수없이 만났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린다. ‘미쳤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고서 세상을 뒤흔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신이 뭔가를 시작할 때 미쳤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그건 당신이 혁신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미치지 않고서 어찌 혁신이 가능하겠는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큰 위험 감수다. 사업도 이런 식으로 과감하게 해야 할까? 저자는 ‘올인하지 마라', ‘한 번에 모든 것을 걸지 마라'고 말한다. 제품 생산을 예로 들자면 한꺼번에 많은 양을 생산하지 말고 소량을 생산해 소비자 반응을 떠본 다음 보완해서 더 생산하는 식으로 가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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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을 받아들이라는 충고도 재밌다. 사업을 하다 보면 실수도 하고 예상치 못한 위기에 빠지기도 한다. 저자는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며 위기를 정면 돌파하라고 권한다. 월트 디즈니 창업자가 동물 캐릭터 저작권을 몽땅 파트너한테 뺏긴 뒤 절망하지 않고 쥐 캐릭터를 만들어 성공한 것을 일례로 꼽았다.

‘해리포터' 저자인 조앤 롤링 사례도 눈길을 끈다. 조앤은 런던 앰네스티 인터내셔널과 맨체스터 상공회의소에서 일할 때 업무시간에 소설을 쓰다가 잘렸다. 런던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한 소년을 보면서 동심의 세계를 그려보고 싶었고 ‘해리포터'를 썼다. 창업자라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기회를 엿보라는 의미를 담은 사례다.

저자가 책상 옆 화이트보드에 써놨다는 문제해결방안 목록도 유심히 살펴볼 만하다.  ‘미노베이션(minovation) 하라’도 그 중 하나다. 미노베이션은 ‘미니(mini)’와 ‘이노베이션(innovation)’의 합성어로 ‘작은 혁신'을 뜻한다. 저자는 창업 초기에는 거대한 뭔가를 만들기보다는 작은 것부터 혁신하고 늘려가는 게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투자자는 세상을 뒤엎을 수 있는 스타트업을 찾는다. 창업자한테 “그 사업, 규모 확대가 가능하겠냐?”고 묻는다. 창업자는 무언의 압박을 받는다. 제품이 팔리지 않거나 사업이 제자리에서 맴돌면 새로운 뭔가를 시도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승부수를 생각하게 된다. 저자 생각은 다르다. 기존 방식에 작은 변화를 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썼다.

창업자가 저지르기 쉬운 또 다른 실수는 이것저것 손을 대는 것이다. 아무래도 안심이 안돼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집중이 안돼 이것도 망치고 저것도 망치기 쉽다. 저자는 ‘핵심에 집중하라’고 썼다. 애플이 성공한 것도 스티브 잡스가 제품 수를 대폭 줄여 핵심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의 ‘스케일업(규모확대) 지상주의'와 창업자들의 조급증에도 일침을 가했다.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창업자들에게 손익 따지지 말고 규모부터 키우라고 독촉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작은 것부터 실행하지 않고는 큰 비전을 실현할 수 없다며 성급하게 규모를 키우는 것이야말로 스타트업이 실패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리더십에 관한 조언도 했다. 성공한 리더의 공통점으로 △다가가기 쉽다 △자신을 잘 파악한다 △진실하게 다가간다 등을 꼽았다. 한때는 리더는 개인사를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들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소통에 익숙한 세대가 사회에 진입하고 있어 리더가 자신의 취약점까지 드러내며 진솔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쌍둥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책을 마무리했다. 부모 시대에는 한 번 취업하면 평생 같은 일을 하기만 하면 됐지만 지금은 일을 새롭게 ‘창조’해야 하는 시대인 만큼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그냥 시작하라고 말한다. 또 남들이 ‘미쳤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혁신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충고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열광한다는 소식을 접하곤 한다. 안정적이기 때문이라는데, 과연 그럴까. 로봇이 일자리를 위협하는 시대, 100살까지 살아야 하는 시대에 평생직장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자녀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해도 되는 게 아닐까. 창업자라면, 젊은 자녀를 둔 부모라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끝)

2016년 6월 15일 수요일

반바지 입고 출근하면 '아재 기업'에서도 혁신 가능할까?

한국경제신문 오늘 아침자 스타트업면에 실은 칼럼을 블로그에 옮겨 싣는다. 반바지 입고, 10시 출근한다고 '아재 기업'에서 혁신 나올까. 제목이 좀 강한데, ‘스타트업 문화’에 관해 몇 자 적어 봤다. (광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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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3월24일 ‘스타트업(초기창업기업) 삼성 컬처 혁신’을 선언한 후 ‘스타트업 문화'에 관심이 쏠렸다. 세계 초일류 기업' 삼성전자가 왜 스타트업처럼 일하자고 선언했을까? 스타트업처럼 일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 스타트업 문화는 어떤 것일까? 이런 것이 화두였다. “삼성이 기업문화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말도 나왔다.


삼성전자가 ‘컬처 혁신’을 선언한 것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혁신 경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새로운 것을 내놓지 않으면 삼성이든 애플이든 심하게 까인다. 혁신이 가능한 조직으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게 됐다.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기업문화를 바꿔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혁신적인 제안이 복잡한 결재 라인을 거치느라 지연되거나 변질된다면 조직원들은 입을 다물게 마련이다.


대기업들이 따라할 만한 ‘스타트업 문화'는 과연 어떤 것일까? 반바지를 입어도 되고, 아침 10시 이후에 출근해도 되고, 사장을 “브라이언"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이 스타트업 문화일까? 아니다. 이런 것은 겉모습에 불과하다. 소통과 혁신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면 ‘스타트업 문화’라고 할 수 없다. 특히 조직의 책임자가 앞장서서 생각을 바꾸고 조직과 관행을 바꾸지 않으면 흉내내기에 머물게 된다.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D.CAMP) 입주 스타트업들을 보면 ‘스타트업 문화’는 제각각이다. 창업자 성향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디캠프 입주 첫 날 필자를 놀라게 한 스타트업도 있었다. 인원이 다섯 명에 불과한데 대표 자리를 큼지막하게 따로 마련한 게 거슬렸다. 대기업 중간간부 출신인 대표는 꽤 권위적이었다. 결국 개발자가 대표의 독단적 의사결정에 반발해 퇴사했고 회사는 위기에 빠졌다.


정반대 경우도 있다. 자리만으로는 누가 대표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스타트업도 있다. 이 스타트업 대표는 방문을 열고 “대표님 계세요?”라고 물으면 직원들 사이에서 “여깄어요"라고 답하며 일어선다. “왜 거기 앉아 있느냐?”고 물었더니 “직원들과 함께 있어야 진솔한 얘기를 들을 수 있고 신속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대표가 꼭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소통을 제대로 하느냐가 중요하다.


요즘 ‘아재 개그'가 유행하고 있다. 중장년층이 즐길 만한 썰렁한 우스갯소리를 ‘아재 개그'라고 한다. ‘아재'는 ‘아저씨'의 낮춤말로 크게 거슬리진 않는다. 창업계에서는 ‘아재’를 아예 ‘꼰대'라고 부른다. 아랫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중장년 간부들을 비꼬는 말이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가 꼰대를 상징하는 말이다. 이런 꼰대가 사라져야 제대로 돌아갈 것이란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다.


정부나 대기업이 주도하는 행사에서는 ‘꼰대'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축사1, 축사2, 축사3이 대표적이다.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국회의원, 단체장 등이 잇따라 단상에 올라 비서가 써준 축사를 읽는 모습… 소통이나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 ‘아재들의 잔치'일 뿐이다. 창업계 행사에서는 이런 모습이 거의 없다. 돈을 많이 들이지 않은 소박한 행사인 데도 부담을 주지 않고 흥겹다. 행사 진행은 통상 주최 측 실무자가 맡는다.


디캠프는 최근 사무실 빈 공간에 캠핑용 탁자와 울긋불긋한 접이식 의자 여섯 개를 비치했다. 모서리에는 소형 텐트도 쳤다. 센터장인 필자는 “이 공간도 활용하자"고 제안만 했고 나머지는 직원들이 토론해서 정했다. 사무실을 캠핑장처럼 꾸민다는 게 꺼림칙했지만 내버려뒀다. 직원들은 블루투스 스피커도 사서 탁자 위에 올려놨다. 소요비용은 약 100만원. 완성된 모습은 기대 이상이었다. 다들 좋아한다.


혁신적인 기업문화를 만들고 싶다면 조직원들이 엉뚱한 아이디어를 거침없이 쏟아내게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 문화'는 정해진 게 아니다. 저마다 자기네 실정에 맞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요즘 창업계 행사장에 대기업 기업문화 담당자들이 종종 나타난다. 필자는 최고경영자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업계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고, 왜 그렇게 하는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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