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3일 수요일

"아재, 제발 나이 좀 묻지 마세요"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D.CAMP) 센터장으로 일한 1년7개월 동안 명함을 주고 받은 사람이 약 3000명쯤 된다. 이 명함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발견한 게 있다. 이들 중 필자가 나이를 아는 사람이 열 명도 안된다는 점이다. 디캠프에서 ‘호랭이 클라스'란 강좌를 운영하는 1974년생 호랑이띠 투자자⋅창업자들 말고는 나이를 아는 이가 거의 없다.

필자가 나이를 묻지 않았고 그들도 나이를 물어오지 않았다. 창업계에서는 나이는 별 거 아니다. 많다고 대접해주지도 않고 적다고 하대하지도 않는다. 만나면 나이부터 따지는 우리네 풍토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창업계에서는 나이를 묻지 않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 다른 곳 사정은 잘 모르겠고 적어도 ‘강남 창업계'에서는 그렇다.

간혹 창업 행사를 참관하려고 디캠프에 온 정부 산하기관 사람들이 슬그머니 나이를 물어올 때가 있다. 자신이 나이 많다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고 싶은지, “OOO 상무 아세요? 제 3년 후배에요.” 이런 식으로 물어온다. “아, 그러세요”라며 웃어 넘기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굳이 나이를 따지면 동생뻘인데 형 대접 해달라는 얘긴가?

이럴 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재, 나이 좀 묻지 마세요!” 창업을 통해 혁신하겠다는 판에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나이로 위아래 따지기 시작하면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살아남기 어렵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 식으로 찍어누르면 누가 자기 생각을 말하려 하겠는가. ‘스타트업 문화'를 배우고 싶다면 나이 따지는 관행부터 바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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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지스탁 문경록 대표는 이런 얘기를 했다. 실리콘밸리 창업 스쿨 드레이퍼대학에서 연수하던 시절 자신이 동기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았다. 그래서 ‘팀장을 맡아야 하나’ 걱정했다. 아니었다. 나이 어린 똑똑한 친구가 팀을 이끌었고 다들 좋아했다. 그런데 한국 기자가 문 대표를 취재한 뒤 ‘드레이퍼대학 최고령 창업자'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문 대표는 “나이를 따지지 않아 좋았는데 그런 기사를 보니 황당했다"고 말했다.

구글 최고경영자(CEO)인 순다 피차이만 해도 그렇다. 피차이는 1972년생 인도인. 2004년 구글에 입사했고 10년 후인 2014년 42세에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구글 CEO가 됐다. 이 바람에 피차이보다 나이가 많고 피차이보다 먼저 입사한 선배들이 한순간에 모두 부하직원이 됐다. 그래도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될 만한 사람이 CEO가 됐다’며 반기는 분위기였다고.

사실 나이가 들수록 나이를 따지면 손해다. 또래는 하나씩 멀어지고 아래 사람들은 자꾸 거리를 두려 하고… 놀아주는 이가 없다. 나이를 따지지 않고 ‘친구’가 되면 하이테크에 친숙한 젊은이들한테 틈틈이 배울 수 있다. 연륜을 활용해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영화 ‘인턴'에 나오는 70세 비서 벤(로버트 드 니로)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고 하는데, 찬물까지 위아래를 따져야 한다면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장유유서(長幼有序) 기본정신까지 버리자는 건 아니다.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서로 존중하는 게 맞다. 다만 혁신으로 국가 경쟁력이 판가름나는 지금은 나이 따지는 관행이 걸림돌이 된다는 얘기다. 자꾸 나이를 따지면 ‘아재'이고, 나이로 찍어누르면 ‘꼰대'다. 아재 취급, 꼰대 취급 받기 싫으면 나이를 묻지 말고 그냥 어울리면 된다. (끝)

한국경제신문 8월3일자에 실은 칼럼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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