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4일 목요일

테슬라가 내년에 제주도에서 전기차를 판매한다?

테슬라가 내년에 제주도에서 보급형 전기자동차 '모델E'를 판매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전자신문 기사이고 "테슬라코리아 관계자" 멘트까지 들어가 있어서 읽어봤는데, 사실이라면 대박이다. 보급형인 데다 정부가 보조금을 얹어주기 때문에 2200만원이면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동차시장 판을 흔들 수 있는 선수가 한국에 들어온다고 기대해도 될 것 같다. 그런데 몇 가지 팩트가 틀린 것 같아 간단히 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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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테슬라가 제주도에서 판매를 시작한다는 건 이해가 된다. 제주도는 전기차 도입에 적극적이다. 2030년까지 "전기차 섬"으로 바꾸겠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제주도는 면적이 좁아 슈퍼차저(충전소) 몇 곳만 열어도 충전 문제가 해결된다. 테슬라가 한국 내 첫 판매지로 제주도를 택하는 건 수긍이 간다.


판매 시기. 전자신문은 "내년 상반기 이후"라고 썼다. 내년 하반기 또는 2017년라는 뜻인 것 같다. 내년 하반기에 판매를 시작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상용제품 공개 시기는 내년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내년 3월 제네바 모토쇼에서 공개한다는 기사도 나왔다. 그러나 판매 시기는 2016년보다는 2017년일 것 같다. 테슬라 창업자 일런 머스크가 지난 7월 “모델3는 2년 이내(Model 3 in just over two years)’라고 밝힌 바 있다.


가격. 원래 4180만원, 제주도 판매가 2200만원. 테슬라가 35,000달러(세금제외)라고 밝혔으니 4180만원은 크게 어긋날 것 같지는 않다. 모델S나 모델X 가격은 1억원 안팎. 가격이 반으로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자동차 업체들한테 위협적인데, 환경부와 제주도가 보조금을 지급해 2200만원이면 살 수 있다? 대박. 보조금을 이렇게나 많이 태울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제품이 나온 건 아니어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모델S나 모델X 성능과 소비자 만족도를 감안하면 2200만원이라면 시장파괴적이다. 쏘나타 아반테가 임자 만났다.


그런데 판매할 차가 "모델E"라는 게 이상하다. 테슬라가 내놓을 보급형 전기차 이름은 "모델E"가 아니라 "모델3"다. 원래 "모델S" "모델X"에 이어 "모델E"를 내놓아 "SEX "를 완성하려 했으나 포드가 "모델E" 이름을 선점한 바람에 "모델3"로 바꿨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모델E"라니... 테슬라가 "모델E" 상표권을 넘겨받아 “모델E”로 내놓을까? 기자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슈퍼차저 충전을 "당분간 무료"라고 쓴 것도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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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more thing. 자동차 메이커들이 로비를 벌여 테슬라의 계획이 뒤틀리는 일은 없어야겠다. 자동차 메이커들이 테슬라의 상륙을 막기 위해 로비를 벌일 수 있다. 나리들이 로비에 넘어가선 안된다. 싸고 좋은 차를 굴릴 소비자 권리를 짓밟아서는 안된다. 국내 자동차 업체들을 자극할 필요도 있다. 자율주행차 전기차 경쟁에서 한국은 뒤처졌다. 문을 걸어잠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테슬라 전기차를 들여와 경쟁시켜야 한다. /광파리

최치선 님의 글도 참고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링크.

2015년 12월 17일 목요일

장진태는 왜 버클리 음대 그만두고 아이링 만들었나?

디캠프(D.CAMP) 주최 ‘디시전(D.CISION)’ 창업 캠프의 첫 강사가 억스(AAUXX)의 장진태 대표란 말을 들었을 땐 약간 실망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분을 내세우고 싶었는데 장 대표는 아직 창업계 스타는 아니다. 휴대폰 손가락걸이 '아이링(i-Ring)'으로 대박을 터뜨리고 있지만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기대반 우려반 심정으로 강연을 지켜보기로 했다.

디시전. 17~18일, 제주 한화콘도. 17일 오전 제주공항에 도착할 때부터 눈발이 휘날리더니 길에 수북히 쌓였다. 누군가 “제주도에서 눈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장 대표의 강연은 점심식사 후 시작됐다. “Think Big, Start Small”이란 말을 하길래 고담준론을 하려나?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어렸을 때 별명이 ‘장가이버’였다”, “대학에서 실내디자인을 전공했다", “군복무 시절 음악에 빠져 (미국)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갔다", “학교를 그만두고 2007년 귀국해 창업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걸 보고 부랴부랴 노트북을 꺼내 받아치기 시작했다. 다음은 장 대표가 말한 창업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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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부자가 아니었다. 유학 떠날 무렵 아버지 사업이 망해 유학비를 대줄 형편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1000만원짜리 마이너스 통장 두 개를 주면서 “이것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전부다"고 하셨다. 첫 학기 수업료가 1000만원쯤 됐다. 수업료 내고 책 사고… 두세 달쯤 지나자 남은 돈이 200달러, 300달러쯤 됐다. 그래서 일을 시작했다.

할 만한 일이 별로 없어서 주로 식당에서 알바를 했다. 학교 친구들은 “일하러 왔냐? 공부하러 왔냐?”고 놀려댔다. 돈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명가 기질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첫번째 사업 아이템은 해외구매대행이었다. 당시 한국인들은 이베이 같은 곳에서 물건을 사고 싶어도 마땅한 통로가 없었다. 그래서 2004년쯤 해외구매대행 서비스를 시작해 돈을 벌었다. 나랑 한국에 있는 프로그래머랑 달랑 둘이서 다 했다. 처음에는 다양한 품목을 하다가 점차 악기에 집중했다. 구매단가가 최소한 300만원이나 되고 수수료가 5~10%나 돼 한 달에 10건, 20건만 해도 학비 생활비가 나왔다.

사업이 잘 됐다. 당시 한진택배랑 거래 했는데 한진택배 사장이 사업을 팔라고 했다. 팔지 않았다. 그때 팔았다면 편하게 유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혼자서 일하다 보니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한국과 미국이 밤낮이 달라서 제품을 제때 배송하지 못했고 고객 불만은 커졌다. 결국 2년쯤 하다가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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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아이템은 악기 줄을 감고 푸는 장치를 만드는 거였다. 음악을 하다 보니 줄을 감고 푸는 게 너무 번거로웠다. 자동으로 감고 푸는 걸 기획했는데 미국은 제조업 기반이 너무 약해서 만들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2007년 학교를 그만두고 제품 스케치만 들고 귀국했다. 당시엔 디캠프 같은 창업 지원 센터가 없어서 집 앞 차고를 월세 20만원에 빌려서 썼다. 여기서 2년 가까이 버텼다. 그때는 제조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금형업자한테 사기를 당했다. 결국 제품을 내놓지 못했다. 그때 깨달았다. 발명가와 사업가는 결코 같지 않다는 것을.

아이링(i-Ring)이 회사를 살렸다. 그걸 기획한 건 2009년이었다. 돈이 없어서 만들지 못했을 뿐이었다. 악기 제품 만드느라 부모님 돈, 부모님 친구 돈 등 3억원쯤 빚을 진 상태였다. 2010년쯤 되자 비슷한 제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발명가 자존심 때문에 남이 하는 건 하지 않는다. 그런데 2010년에 만난 어느 사업가가 “장 사장이 하면 더 잘할 것"이라며 “돈을 댈 테니 해 보자"고 했다. 그래서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2주만에 제품을 설계해서 도면을 넘겨줬다. 계약서 쓰기도 그렇고 그냥 믿고 넘겼다.


느낌이란 게 참 중요하다. 그 사람은 나한테 정말 잘해줬다. 밥도 사 주고 술도 사 주고. 그런데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걸 봤다. 꺼림칙했다. 그래서 제품 도면을 넘겨주기 전에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디자인 특허를 출원했다. 아니나다를까 그 사람은 나한테 도면을 넘겨받고는 자기 이름으로 특허를 냈다. 그리고는 사람이 180도 달라졌다. 결국 특허 소송이 붙었는데 혹시 몰라서 출원했던 디자인 특허 덕분에 승소했다.


현재 아이링을 31개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 아이링이 이렇게 팔리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나를 괴롭혔던 사람이 나보다 4개월 먼저 물건을 내놨다. 화가 나서 품질로 승부를 벌이기로 하고 계속 품질을 개선했다. 처음에는 3개월 쓰면 헐거워지는 등 품질이 별로였다. 그런데 개선하다 보니 소비자들이 알아봤다. 그래서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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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고민했던 것이 있다. 어떻게 제품을 차별화하느냐였다. 타오바오, 알리바바 사이트를 둘러봐라. 우리 디자인 베낀 제품이 너무 많다. 베트남에서도 고맙다는 메일이 날아올 정도다. 우리 제품을 베껴서 부자가 됐다는 메일이다. 난 그 사람과 거래한 적이 없다. 인도네시아에서도 그런 메일 받았다. 처음엔 기분이 나빴는데 지금은 기분 좋다. 중국의 유명한 기업도 베낀 제품을 내놨는데 지켜보고 있다.

스타트업이 무엇으로 차별화하겠나. 마트 가 봐라. 대기업은 뭔가를 하나 붙인다. 양을 더 준다든지, 가격을 대폭 할인해 준다든지. 스타트업은 그렇게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국내외 전시회에 자주 나갔다. 처음엔 전시장에서 열심히 물건을 팔았는데 그렇게 하면 장사는 되지만 회사가 성장할 수는 없다. 품질과 서비스를 끌어올려야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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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는 일본에 아이링을 서른셋 팔레트 수출했는데 바이어한테 긴급전화가 왔다. 할인점에 납품할 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는데 포장이 여기저기 떨어져 납품할 수 없다고 했다. 한밤중에 직원들한테 전화를 걸었다. “가자". 직원들 데리고 일본으로 달려가 포장을 모두 수정했다. 땡볕에서 했는데 더워서 죽는 줄 알았다. 그 후 일본 바이어한테 문자가 왔다. 고맙다고, 장기로 사업을 같이 하자고. 해야 할 일을 했는데 상대는 감동했다.

고객 피드백도 중요하다. 고객 메일이 많이 온다. 고맙다는 메일에 대해서는 직원들이 답신한다. 컴플레인을 하는 분들한테는 내가 일일이 답신한다. 이렇게 컴플레인 했던 분들이 우리 팬이 됐다. 초기 고객을 팬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한류 스타 연예인들이 아이링을 많이 사용하는 것도 성공 요인이 됐다. 가수 보아가 사진을 찍는데 유심히 보면 아이링이 계속 바뀐다. 이런 사진이 중국 아시아 등지에 퍼지면서 잘 팔리게 됐다.

제품 포지셔닝을 정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업계획을 쓸 때랑 시장에 내놨을 때는 정말 다르다. 계속 조정해야 한다. 아이링을 처음 개발했을 땐 휴대폰을 떨어뜨리지 않게 하자는 게 우선이었다. 그런데 이걸 강조했더니 팔리지 않았다. 아이링을 이용하면 폰을 세울 수 있다는 것도 강조해 봤다.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플라스틱 고리를 하나 만들어 자동차에 폰 거치대로 쓸 수 있다고 알리자 주목하기 시작했다. 나는 고객한테서 답을 찾았다. 원래 알았던 게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전시회에 나가면 많은 질문을 받는데 5~10개로 압축할 수 있다. 이것만 만족시켜주면 성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점과 선 얘기를 하겠다. 나는 미술도 했고 음악도 했다. 돌아보면 다 의미가 있다. 대학 다닐 땐 디자인 공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때 배운 캐드(CAD)가 도움이 됐다. 미국 가서 음악을 공부했는데 음악 이해도가 높아졌다. 앞으로 음악 관련 제품을 많이 개발할 생각이다. 창업은 필수다.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 실패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아이링은 여덟번째 아이템이다. (“칠전팔기"). 도전하라.

장 대표의 강연은 여기까지. 오랫만에 멋진 창업자를 만났다. 디캠프 담당자가 장 대표를 섭외했다고 알려줬을 때 단순히 아이링을 만드는 창업자라고 생각했던 게 미안했다. 장 대표를 만난 건 훗날 아주 의미 있는 점으로 남을 것 같다. 선전을 기대한다. /광파리

디캠프 '디시전' 창업 캠프 사진을 공유합니다. 링크.

2015년 12월 8일 화요일

알리바바 “빅데이터 분석해 DT시대 주도하겠다"

중국 항조우에 있는 알리바바 본사를 어제 방문했다. 중국 정부 초청을 받은 8명의 기자/블로거들이 함께 찾아갔다. 항조우 시내 호텔에서 버스로 출발했는데 내년 G20 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곳곳에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하철 공사도 벌이고 아파트단지도 짓고… 한 시간쯤 가자 건물단지가 나타났다. 건물마다 큼지막히 1, 2, 3, 4, 5… 숫자가 씌여 있었다. 대학 캠퍼스인가 생각했는데, 알리바바 본사였다.

정문에서 내려 건물로 둘러싸인 한복판을 가로질러 갔다. 한참 동안 걸었다. 어느 건물 앞에는 여러 사람이 노를 젓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협력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남자 셋이 벌거벗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조형물도 있었다. 회사가 커져도 겸손하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뜻도 담고 있고 심사숙고하라는 뜻도 담고 있다고 했다.


알리바바 측 브리핑 내용 중 기억에 남는 것만 메모한다.

회사 소개 동영상. 지체장애인이 타오바오 덕분에 자기 그림을 팔 수 있게 됐다고 말하는 대목이랑 우표 20만장을 보유한 노인이 타오바오를 통해 판매한다는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전자상거래가 누군가에겐 기회겠구나… 이런 생각. 창업자 마윈 회장은 102년 영속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아파트에서 창업할 때 했던 그 유명한 말도 했다. “오늘은 어렵다, 내일은 더 어렵다, 그러나 모레는 아름답다.” (Today is difficult, tomorrow is more difficult, but the day after tomorrow is beautiful). 사람들은 대개 내일 밤 죽는다. 알리바바 사람들은 모레 아침 밝은 해를 볼 것이다.

알리바바. 1999년 마윈이 친구 17명과 함께 항주에서 창업한 기업. 지금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비전은 어디서나 누구나 쉽게 사업 할 수 있게 하는 것. 알리바바는 중소기업들이 전자상거래를 원활하게 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서비스다. 알리바바의 비전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데이터 공유 플랫폼, 2) 102년 동안 지속하는 기업, 3)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기업. 알리바바는 B2B, B2C, C2C 모두 갖췄다.

B2B는 알리바바닷컴과 1688닷컴에서 한다. 알리바바닷컴은 1999년에 시작했고, 현재 217개 국가/지역에서 6천만명의 소비자/공급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국 인도 영국이 가장 큰 소비시장. 국내에서는 1688닷컴이 B2B를 이끈다. 얼마나 많은 중소기업이 참여하느냐? 현재 743만명. 오후 1~3시엔 1300만~1500만명에 달한다.

B2C와 C2C는 타오바오와 티몰에서 서비스 한다. 액티브 바이어가 3억8600만, 액티브 셀러는 850만… 타오바오는 2003년 이베이와 비슷한 형태로 시작했고, 티몰은 2008년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 11월11일 광군제(솔로데이) 때 매출은 912억 위안(16조5천억원)을 기록했다. 12분만에 100억 위안(1조8천억원)을 찍었다. 지역별로는 광동성 저장성 상하이가 가장 높다. 제조업체가 많이 분포돼 있기 때문.


알리페이. 새로운 핵심사업이다. 지급결제, 대출, 펀드, 투자 등 종합금융업을 한다. 알리페이는 2004년 시작한 지급결제 서비스. 그때는 중국엔 마땅한 결제시스템이 없었다. 신용카드도 없었고 구매자-판매자 간 믿음도 없었다. 알리페이는 소비자가 구매하면 바로 판매자에게 돈을 주지 않고 배송이 끝나면 돈을 전해주는 (에스크로) 방식을 택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온라인 사기를 막았고 중국인들의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었다. 작년 기준으로 알리페이 회원은 9억명이고 매일 6억명이 알리페이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알리페이로 가스비 수도세 등 공과금도 납부한다.

차이니아오 익스프레스. 2013년에 시작한 물류 서비스다. 중소기업의 물류를 돕기 위해 시작했다. 차이니아오는 ‘풋내기'를 뜻한다. 마윈도 전에 “나도 원래 풋내기에 불과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현재 15개 물류/운송업체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617개 물류 허브를 구축했다. 창고를 짓고 배송차량을 확보하는 대신 물류업체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했다. 차이나 로지스틱스는 224개 국가에 배송 가능하다.

“DT 시대”. 마윈이 자주 하는 신조어다. DT는 데이터 테크놀로지. IT 시대가 가고 DT 시대가 온다. 누가 고객 데이터를 잘 활용해 고객 니즈에 부응하느냐가 성공을 좌우할 것이다. 알리바바는 중국 선전, 홍콩, 베이징, 칭타오와 실리콘밸리, 싱가포르에 데이터센터를 지었고, 독일 일본에도 데이터센터를 지으려고 한다. 2009년 클라우드 컴퓨팅을 도입했는데 그때는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상상도 못했다. 이제는 빅데이터가 모든 업무의 핵심이다. 빅데이터를 분석하면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예측할 수 있다.

알리바바의 업무 4가지를 트라이앵글 형태로 표현할 수 있다. 중앙에 빅데이터가 있고, 양 옆에 금융과 유통이 있고, 위에는 전자상거래가 자리잡고 있다. 이밖에 “2H” 사업도 한다. 건강(health)과 기쁨(happiness) 비즈니스. 기쁨 비즈니스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말한다. 그리고 알리바바는 세계화를 지향한다. 모든 게 세계화를 향해 간다.


나중에 들은 얘기. 알리바바가 추구하는 3대 방향. 첫째 세계화, 둘째 지역개발(local development), 셋째 빅데이터. 여기서 ‘지역개발’이 눈에 띈다.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활용해 지역개발을 돕겠다는 뜻일 텐데, 세계화와 지역개발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게 이채롭다. 전자상거래와 물류를 중시하는 기업답게 빅데이터를 강조하는 대목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중국 국내는 24시간, 해외는 72시간 배송이 목표라고 했다.

알리바바가 강조한 것은 전자상거래, 알리페이, 그리고 빅데이터였다. 전자상거래를 하다 보니 알리페이가 필요해서 만들었고, 이제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고객이 무얼 원하는지 정확하게 분석해 만족을 높이겠다는 전략. 아마존도 그렇고… 전자상거래 업체는 어디든 빅데이터를 강조한다. 빅데이터를 분석해 유통을 혁신하겠다는 얘기다. 시간이 부족해 알리바바에 관해 자세한 얘기를 듣지 못한 게 아쉬웠다. /광파리


2015년 12월 5일 토요일

중국 바이두도 자율주행차 주행 시험 중이다

중국 정부 초청으로 3일 베이징에 도착했다. 현직 기자 4명, 블로거 4명. 이틀째인 4일 오전 바이두 본사를 방문했다. 사진 촬영은 철저히 통제해 거의 찍지 못했다.

바이두 직원은 우리를 홍보관으로 안내했다. 첫번째 홍보관에서는 회사 연혁을 설명했다. 1999년 로빈 리가 하이퍼링크 기술을 개발했고, 2000년에 7명이 회사를 설립했고, 2005년에 나스닥에 상장했다는 얘기 등등…

작년부터는 O2O에 관심 많고 사용자도 많다고 했다. 음성인식 사진인식 기술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고, 음성인식 정확도는 99%나 된다고 했다. 직원 45,000명 중1/4이 엔지니어라고. 인공지능에 대해 한참동안 설명했다. 베이징 상하이 선전 실리콘밸리 도쿄에 사무실. 베이징에는 대규모 인공지능센터를 짓고 있고, 내년에 오면 보여주겠다고.

바이두는 이제 중국을 넘어 세계로 나가고 있다고 했다. 미국 브라질 이집트 인도네시아 태국 일본 등지에서 이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해외 사용자가 7억명이나 된다고 했다. 바이두로선 “중국의 구글” 굴레에서 벗어나 "글로벌 바이두"가 되고 싶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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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홍보관에서는 바이두 서비스 시연을 했다. 특히 음성검색 시연을 자세히 했다. 자금성을 검색하자 인파가 많은 곳이 지도에 표시됐다. 영화도 음성으로 검색했다. 상영 영화관, 요금, 예매가능좌석, 모바일 결제... 의사 검색 서비스도 시연했다. 베이징 시내 병원을 검색한 다음 의사별 소개랑 진료가능시간을 보고 예약할 수 있다고.

사진번역 앱도 시연했는데 재밌었다. 중국어 메뉴 사진을 찍어 한국어를 택하자 번역이 됐다. 정확하지는 않았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구글도 비슷한 서비스를 내놨는데 ‘중국의 구글’답다.

빅데이터 기술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시연했다. 중국 도시 간 인구이동 그림을 보여주기도 했고, 외국인이 즐겨 찾는 관광지를 지도에 표시해 보여줬다. 중국인이 요즘 관광하러 많이 가는 나라는 일본이 1위, 프랑스가 2위…한국은 5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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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응답 중에서도 몇 가지 기억나는 게 있다. 광고수입이 전체 매출의 95%를 차지한다, 중국 최대 광고 플랫폼이다, 광고매출에서 이미 CCTV를 넘어섰다는 얘기도 했다.

바이두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율주행차를 개발해 시험을 끝냈다는 얘기였다. 도로주행을 끝냈다는 얘기냐고 물었더니 자세한 내용은 말해줄 수 없다, 출시 시기는 미정이라고 했다.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말했다. 바이두 본사 앞에서 자율주행차가 지나가는 걸 봤다고. 바이두 담당자는 로봇도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지고 보면 자율주행차도 로봇의 일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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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바이두 본사에 관해 얘기했다. 현재 사무실이 너무 좁다, 새 사옥을 짓고 있고 두 달 후 입주한다고 했다. 규모가 현재 사옥의 5배나 된다고 했다.

설명을 들으면서 놀란 게 하나 더 있다. 올해 성장률이 40%나 된다고 했다.초창기 기업도 아닌데 40% 성장? 믿기지 않았다. 네이버가 올해 40% 성장한다면 믿겠는가. 나오는 길에 휴게실을 둘러봤다. 이글루처럼 생긴 독특한 공간이었다. 앉아서 쉴 수도 있고 누워서 잘 수도 있다고 했다.

바이두. 구글을 뛰어넘겠다고 하면서도 구글을 따라하기도 하는... 바이두가 자율주행차를 개발했다는 건 의외였다. /광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