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1일 목요일

중국 스타트업의 쓴소리 “그 팀이 우승할 만한지 잘 모르겠다"

중국 상하이에 다녀왔다. 지난 8, 9일 이틀 동안 열린 스타트업 페스티벌 ‘테크크런치 상하이 2015’에 참가하고 상하이 창업계를 둘러봤다. 한 마디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중국 테크/창업계 소식을 꾸준히 읽어 나름대로 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대단했다. 전시장에서 중국 스타트업 사람이 했던 말은 쇼크였다. “디데이 우승팀을 잘 안다. 그 회사 제품은 우리 제품보다 훨씬 단순하다. 그 팀이 우승할 만한지 잘 모르겠다."

디데이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D.CAMP)가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 여는 데모데이 행사다. 매월 50개가 넘는 스타트업이 지원하고 심사를 통과한 5개 팀이 투자자와 창업자들 앞에서 발표한다. 역대 우승팀은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디캠프는 역대 디데이 우승팀 ‘명예의전당’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그 팀이 우승할 만한지 잘 모르겠단다. 헉! 이럴 수가… 중국 스타트업 직원은 디데이 우승팀에 대해 빠꼼히 알고 있었다.

이번 상하이 방문 소감을 한 마디로 줄이면 ‘한국은 오만하다'이다. 쥐뿔도 없는 것들이 온갖 똥폼 다 잡고 있다. 중국인들은 자기끼리 모여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 중국말을 한국말 만큼 잘하는 디캠프 최시훈 매니저가 “솔직히 말해 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말했단다. 이들이 말한 한국인은 좁게는 중국을 들락거리는 한국 스타트업 창업자들이고, 넓게는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 기업인이다. 한국이 분수 모르고 오만하게 군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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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훈 매니저가 전해준 얘기 중 일부만 공개한다.

중국에서 살아남은 대만 스타트업이 하나 있다. 중국 사람들은 그 스타트업이 대만에서 시작했다는 걸 모른다. 외국 스타트업이 중국에 진출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중국 서비스처럼 보이도록 하라는 게 아니다. 중국인들이 자연스럽게 쓰도록 완벽히 현지화해야 한다. 한국 스타트업들이 중국 와서 발표하는 걸 보면 엉성한 중국어를 쓰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하면 게임 끝이다. 중국인이 있는 팀은 그나마 나은 것 같다.

대만과 한국 창업자들한테 공통적인 문제가 있다. 콧대가 높고 자존심이 엄청 세다는 것이다. 한국이 더 심한 것 같다. 중국보다 먼저 산업이 고도화됐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 한국 창업자들은 제품에 대해 자세히 묻고 내부를 들여다 보려고 하면 카피할까봐 겁이 나서인지 방어적으로 대한다. 사실 되게 웃기는 행위다. 카피하려면 홈페이지만 보고도 다 한다. 내부까지 보려고 하는 건 관심이 있기 때문이고 가치 있는 조언이 나올 수도 있다.

중국 팀들을 봐라. 다 까서 보여준다. 그들은 카피를 무서워하지 않을까? 무서워한다. 그런데 그들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딱뜨린다. 상대방이 관심을 보이고 경쟁사가 하려고 하는 걸 먼저 해 버린다. 이게 카피캣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국 팀처럼 가린다고 가려지는 게 아니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건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한국 스타트업은 중국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찾지 못한다면 아예 중국으로 옮기든지. 한국에 있으면서 중국에 발만 걸치고 횡재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한국 어느 기관이 스타트업들을 데리고 중국 곳곳을 쑤시고 다니던데, 현지 사정을 모르는 것 같다. 번지를 잘못 찾아가기도 하고, 통역을 써서 연락하기도 한다. 스타트업이 중국 진출 방법을 잘 모른다면 기관이 먼저 중국 파트너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우수한 팀들을 끌어와야 한다.

한국 스타트업 사람들은 쓴소리를 들을 줄 모른다. 대만 사람들은 자기네 제품에 뭐가 부족한지 얘기해 주면 엄청 겸손한 태도로 듣는다. 한국인은 다르다. 중국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불량한 곳도 있다. 설명도 열심히 안 하고. “좋다"는 소리를 안하면 상반신을 뒤로 빼기부터 한다. 불편하다는 거다. 당신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소중한 것은 “니네 제품 좋다"는 칭찬이 아니라 "이것이 문제다"는 지적이다.

나는 중국 화웨이 어느 사업부에서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일하다가 얼마 전에 퇴사했다. 이 회사에는 상시적으로 삼성을 파헤치는 팀이 있다. 물론 샤오미를 연구하는 팀도 있다. 중국에서 삼성이 화웨이와 샤오미 때문에 시장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화웨이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갤럭시노트 나왔을 때만 해도 화면이 큰 폰은 삼성 제품밖에 없었다. 지금은 아니지 않냐. 삼성 스마트폰의 스펙을 중국에서 반값에 만든다.

삼성 점유율이 한창 곤두박질할 때 "삼성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 본사에서 중국전문가 100명을 데려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들이 중국을 알까? 그들이 중국에 와서 뭘 하겠다는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삼성은 화웨이나 샤오미 사람들을 스카웃 하는 전략을 썼어야 했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경쟁사들이 알고 있다. 중국은 인재 유치 경쟁이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그렇게 뺏어오고 전투적으로 준비해야만 살아남는 게 중국 시장이다. 사실 삼성은 중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기본이 되어 있는 회사다. 그런데 위기의 순간에 자꾸 오판을 한다. 도무지 내부 의사결정에 발전이란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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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훈 매니저의 메모를 절반쯤 옮겨적었다. 물론 몇몇 중국인이 평소 생각을 거르지 않고 털어놨을 수 있다. 팩트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인의 속내를 짐작하게 하는 얘기다. 웃어 넘길 얘기는 아니다. 테크크런치 상하이 행사장과 창업지원기업 두어 곳에서 보고 들었던 것, 스타트업 창업자들한테 들었던 것… 이런 걸 종합해 보면 맥락이 통한다.

우리가 들었던 얘기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텐센트가 연말까지 중국 20개 대도시에 창업지원센터를 연다, 레노버는 이미 창업 지원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창업지원기업 엑스노드가 상하이 황포강변에 네번째 창업지원공간을 열었다, 창업지원기관 EFG가 투자한 스타트업이 1000개가 넘는다, 창업 지원이 새로운 사업으로 뜨면서 경쟁이 치열하다,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이 창업 허브가 되려고 경쟁하고 있다…등등.

'대중의 창업, 만인의 혁신(大众创业 万众创新)'. 리커창 총리의 창업 독려는 헛구호가 아니다. 중국 전역으로 퍼져가고 있는 것 같다. 상하이에서 우버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이런 말을 했다. “중국인 13억 중 3억명만 한국인처럼 부지런히 일하면 한국은 없다.” 우리는 껄껄껄 웃었지만 뒷맛이 씁쓸했다. 중국을 다시 봐야겠다. 이젠 똥폼 그만 잡자. [광파리]

2015년 6월 7일 일요일

500비디오스 양성호 대표의 ‘슬픈’ 창업 이야기

어떤 외국 여자든 만난지 1분내에 허그할 수 있는 남자, 쫄딱 망해 캐나다로 건너가서 풍찬노숙했고, 석달 동안 매일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영어를 배웠던 사람, 거기서 부동산 사업으로 제법 돈을 벌었다는 사람, 벤처투자자들이 사업계획서도 보지 않고 투자한 스타트업 창업자… 디캠프에 1년쯤 입주했다가 나간 500비디오스의 양성호 대표 얘기다.

양 대표가 지난 5일 한양대학교에서 대학생 170명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디캠프 교육 담당 김윤진 매니저가 하루 전에야 강연을 부탁했는 데도 양 대표는 기꺼이 수락했다. 당초 이날 강연해 주기로 했던 분이 갑작스레 “메르스 때문에 강연할 수 없다"고 알려오는 바람에 디캠프로서는 ‘히든카드'를 꺼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양 대표 강연은 한 편의 ‘슬픈 코메디’였다. 양 대표는 인생 밑바닥까지 추락했던 슬픈 과거를 웃겨 가면서 이야기했다. 학생들은 양 대표의 ‘슬픈 얘기’를 깔깔깔 웃으면서 들었다. 양 대표는 강연 중간중간 심플로우로 들어온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기도 했고 좋은 질문을 한 학생들에겐 선물을 주기도 했다. 양 대표 강연 중 일부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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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캐나다에서 부동산 사업으로 꽤 잘나가고 있을 때 월트디즈니에서 전화가 왔다. 임원이 놀러 가는데 펜션이 필요하다, 사진으론 좋은데 사진만으론 못 믿겠다, 비디오를 찍어서 보내주라. 이런 얘기였다. 비디오를 찍어 보내줬다. 그때 ‘비디오가 신뢰를 준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미래는 비디오가 주가 될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요즘 배달의민족 등록 업소용 비디오 찍는 사업을 하고 있다. 텍스트+사진으로 된 정보를 누군가 비디오로 옮겨줘야 하는데 일단 저렴해야 한다. GS샵과도 계약을 맺고 사진을 비디오로 바꿔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마이리얼트립도 우리 고객이다. 마이리얼트립에서는 가이드가 상품 아닌가. 소개 영상이 있으면 훨씬 신뢰가 간다.

다음달부터는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와도 함께 일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망설이느냐 실행하느냐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하는 사업은 특별한 게 아니다. 특별한 아이디어 가지고 했을 땐 항상 망했다. 아이디어가 좋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디어 없이 했을 때 성공 가능성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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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해서 성공도 했고 실패도 했다. 사업 망한 뒤 캐나다로 가서 제2의 인생을 살았다. 캐나다 생활은 배고품, 서러움, 오기. 이 세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 캐나다 가기 전 한국에서 사업 잘 됐다. 아주 잘 됐다. 기세등등했다. 외제차 타고 다니고… 마지막 순간 어떤 사람한테 사기를 당했다. 믿었던 회사 간부였다. 충격이 컸다.

캐나다로 떠났다. 그동안 쓰레기 같은 생활을 했구나 반성도 했다.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인생을 포맷해 버리고 싶었다. 내 자신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보기로 작심했다. 불법체류자 신분에 영어도 안되고… 해안가 어느 집, 2층침대 4개가 빼곡히 들어찬 작은 방. 월세 12만원. 여기서 기거했다. 먹는 문제. 같은 방에 세븐일레븐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었다. 일이 끝나면 먹을 것을 가져오곤 했다. 그걸 얻어먹고 살았다.

일단 영어를 배워야 했다. 통신회사 고객센터를 이용했다. 가입할 것처럼 전화를 걸면 친절하게 대해준다. 5분만에 끊은 날도 있고 45분 동안 얘기한 날도 있었다. 매일 고객센터에 전화 거는 게 일이었다. 수신자부담이라 공짜다. 상담원이 각국 사람이라 인도 발음, 호주 발음… 다 배울 수 있었다. 전화를 걸고 주주장창 얘기를 했다.

전화번호부를 뒤지면서 돈 버는 방법을 고민했다.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들 명단을 뽑았다. 깨알같이 프린트 해서 벽에 붙여놨다. 700명쯤 됐다. 위에서부터 한 명씩 전화를 걸었다. 이런 걸 “콜드콜”이라고 한다. 마구잡이로 들이댔다. 보수를 받지 않을 테니 일하게 해 달라고 졸랐다. 안됐다. 불법체류자 아닌가. 3개월 이상 이 짓을 했다.

어느날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남은 돈이 300만원쯤 됐다. 이 돈으로 부동산 임대할 테니 임대 요령을 알려달라고 했다. 콜드콜 시작한지 5개월쯤 됐을 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전화를 걸었는데 그 사람이 “한 번 오라"고 했다. 갔다. 가서 말했다. 300만원 렌탈은 하되 렌탈은 필요 없으니 부동산은 가져가고 일 좀 시켜달라고 했다.

키가 크고 까무잡잡한 사람인데 그때 나이가 56세였다. 그 양반이 “껄껄껄” 웃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따라갔다. 변기 고치는 일을 시켰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굉장히 유명한 회장이었다. 수백억대 자산가였는데 나를 기특하게 여겨 그때부터 데리고 다녔다. 아들이 내 또래인데 해외로 나가고 없어서 나를 아들처럼 여겼다. 변기 뚫는 일부터 시작해 시멘트 바르는 일도 했고… 이것저것 수리 일이라면 뭐든지 했다.

이 양반 투자회사는 낡은 고급 부동산을 사서 수리하고 인테리어를 새로 한 다음 비싸게 파는 일을 주로 했다. 일주일이든 한달이든 고급스런 가구로 멋지게 꾸며서 해외에서 온 사람들한테 임대도 하고 재판매도 했다. 나는 아저씨가 만원, 이만원 준 것을 모아서 차를 샀다. 60만원짜리였다.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문짝도 열리지 않고 안쪽에 테이프 붙이고… 그 차를 타고 열심히 일 다니면서 노하우를 배웠다.

다행히 이 분의 도움으로 취업비자를 받았고 돈도 많이 벌었다. 그 당시 밤마다 잠을 세 시간씩 자면서 부동산 매물을 분석했다. 누가 언제 얼마에 사서 얼마에 파는지… 이런 걸 분석하면 예상할 수 있고 예상이 비교적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사서 되팔고 사서 되팔고… 3년도 안돼 100억원 이상 벌었다. 물론 다 내 돈은 아니지만.

그때 갖고 싶은 차는 DBS였다. 제임스 본드가 007 영화에서 타고 나온 영국 수제차. 밤마다 이 차가 달리는 비디오를 봤다. 이걸 보면서 힘을 냈다. 정확히 3년만에 이 차를 샀다. 회장님과 같은 날 하나씩 샀다. 아버지와 아들처럼. 6억이란 돈을 주고. 그 뒤에 포르쉐도 샀고… 내 차가 세 대였다. 화려한 싱글 라이프. 정말 열심히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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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으로 돈을 벌다가 어떻게 창업 하게 됐느냐? 부동산 임대업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임대 사이트를 다 사용해 봤다. 그때 가장 잘나가는 홈어웨이닷컴 사이트도 사용해 봤는데 불편했다. 어느날 다른 사이트를 발견했다. 불편을 모두 없앤 사이트. 주인한테 전화를 걸었다. 샌프란시스코 회사. 에어비앤비. 공동창업자들이 사업을 시작한 아파트로 갔다. 제안을 했다. 니네 사진을 내가 다 찍어주겠다. 당시 나는 부동산 전문 사진 촬영 회사도 운영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같이 다니면서 제안했다.

캐나다로 돌아왔더니 답신이 왔다. 캐나다 파트너가 돼 달라는. 그래서 에어비앤비 사진 촬영 파트너로 일했다. 에어비앤비는 온라인으로 창업을 했지만 창업 초기엔 오프라인 일도 많이 했다. 벼룩시장도 운영했다. 온라인 회사가 왜 이런 것을 할까? 나중에 깨달았다. 온라인 사업은 오프라인에서 풀어야 한다는 것을. 에어비앤비의 성공을 지켜보면서 ‘확장성 있는 사업’이라야 신바람이 나는구나, 확장성 있는 일,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연계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창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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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대표가 강의하는 동안 질문이 쇄도했다. ‘해외로 나가지 않고 인생을 포맷할 수는 없나요?’ ‘외국 여자랑 1분만에 허그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등등. 양 대표는 일일이 답해줬고 맘에 드는 질문을 한 학생들에겐 선물을 줬다. “내가 유쾌한 에너지를 주면 남도 나한테 유쾌한 에너지를 준다. 남한테 뭔가를 얻으려고만 하면 안된다. 유쾌한 에너지를 남한테 주면 유쾌한 에너지를 받게 된다.” 이런 이야기도 했다.

양 대표를 처음 만난 건 올해 초 핀란드 대사관저 만찬에서였다. 누군가 “센터장님, 사진 찍어 드릴께요" 하면서 들이댔다. 느낌이 좋았다. 알고 보니 디캠프에 입주해 있는 스타트업 대표였다. 양성호. 그 후 지난 3월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SXSW 2015’에 함께 다녀왔다. 양 대표는 외국인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포옹하며 요란을 떨기도 했다. 나중에 “친구인가요?”라고 물으면 “처음 만난 사람”이라고 했다. 아픈 상처를 딛고 꿋꿋하게 일어서는 양성호 대표. 늘 옆에서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사진=김윤진) [광파리]

2015년 6월 3일 수요일

쿠팡의 1조원 투자유치와 광파리의 씁쓸한 추억

몇 일 전 쿠팡이 소프트뱅크로부터 1조원 남짓 투자를 유치한다는 소식을 듣고 내 일처럼 기뻤다. 한국에서도 초대형 투자 유치 사례가 나오는구나,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가능하구나, 젊은이들이 좀더 적극 창업전선에 뛰어들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씁쓸했다. 5년 전의 아픈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IT전문기자 시절이었다. 2010년 7, 8월쯤. 취재원과 저녁 먹다가 “소셜커머스라는 게 뜨고 있다. 난리가 아니다. 티켓몬스터 뿐이 아니다. O도 생겼고 O도 생겼고… 업체 수가 스무개는 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이거 대박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층취재를 해 보고 싶었다. 그때까진 어느 매체도 소셜커머스를 크게 보도하지 않았다.

곧바로 취재를 시작했다. 제대로 취재해서 정확하게 전하고 싶었다. 당시 취재수첩을 찾아보긴 그렇고. 티켓몬스터와 쿠팡을 취재한 날은 뚜렷이 기억한다. 비가 내렸고 사진을 찍었기에 더더욱… 그걸로 한국경제신문 1면 톱과 3면 한 페이지를 발랐던 날도 기억한다. 초판을 찍은 직후 편집국장한테 야단맞고 3면을 완전히 다시 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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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몬스터 신현성 대표를 만나러 간 날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강남 갤러리아백화점 인근 어디란 말을 듣고 알려준 주소대로 갔는데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엉뚱한 곳에서 멎었다. 신 대표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갤러리아 앞 주유소 앞으로 오라고 알려줬다. 주유소에 도착했더니 신 대표가 우산이 없었던지 비에 젖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티켓몬스터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정신없이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저것 어지럽게 널려 있고 젊은이들이 여기저기 모여서 회의하는 모습도 보였다. 신 대표 자리는 따로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미국에서 그루폰이 뜨기 시작하는 걸 보고 서둘러 귀국해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얘기, 와튼스쿨 후배들을 끌어들였다는 얘기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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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몬스터 취재를 끝내고 쿠팡으로 갔다. 어딘지는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다지 멀진 않았다. 티켓몬스터와는 달리 쿠팡 사무실은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다. 인테리어도 고급스럽고… 윤선주 이사(윤증현 전 장관의 딸)랑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눴다. 서비스를 막 시작한 신예였지만 야심만만했다. 하버드 선후배 3명이 창업했다는 말도 들었다.

두 업체만 취재했던 것은 아니다. 수없이 전화를 돌렸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었다. 그리고 내린 판단은… 티켓몬스터가 질주하고 있고, 후발주자 중에서는 쿠팡이 눈에 띈다, 재밌는 것은 두 기업 모두 유학생 출신이 시작했다, 만약 둘이 패권을 다툰다면 와튼스쿨과 하버드의 대결이 되는데… 재밌다. 일주일 가량 취재한 뒤 기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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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네 꼭지로 나눠서 썼다.
1면 톱은 전체적인 현황을 정리한 스트레이트.
3면 메인박스는 해설. 소셜커머스 의미와 문제점.
3면 서브박스는 화제(와튼스쿨과 하버드의 대결).
3면 미니박스는 '소셜 커머스의 원조 그루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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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초판을 읽으면서 흐뭇했다. 데스크 6년, 기획부장 2년을 마친 ‘늙은 기자'가 현장을 빨빨거리며 쓴 따끈한 기사가 1면 톱과 3면 한 페이지를 발랐으니 ‘한 건 했다'는 기분이었다. 어떤 후배가 “선배, 잘 읽었어요"라고 말해줘서 기분도 우쭐했다.

그런데… 편집국장이 찾는다길래 국장석으로 갔더니 다짜고짜 짜증을 냈다. 3면 서브박스에 쓴 ‘와튼스쿨과 하버드의 대결' 기사가 맘에 안들었던 모양이었다. “이놈들 왜 써 주신 거에요?” 이 질문을 듣는 순간 몹시 불쾌했다. 왜 썼냐고? 전문기자가 써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서 썼지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꾹 참고 설명했다. 일주일 동안 취재해본 결과 두 기업이 믿을 만 했고 매우 특이한 사례여서 썼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장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다시 쓸께요”라고 말했다. 자리로 돌아와 3면 기사를 완전히 다시 썼다. 서브박스를 메인박스에 합치고 서브박스를 새로 썼다. 국장 얘기에도 일리는 있지만 바꾸고 싶지 않았다. 날려야 하는 서브박스 기사가 너무 아까웠다. 퇴근도 포기하고 저녁식사도 포기한 채 밤 9시까지 '판갈이'를 했다.

이때 처음으로 ‘전문기자’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전문기자를 믿어주지 않는다면 기자 노릇 해먹기 어렵겠다는 생각… 때가 되면 깔끔하게 떠나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쿠팡이 1조원 투자유치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5년 전에 썼던 기사를 찾아봤다. 그러나 ‘와튼스쿨(티켓몬스터)과 하버드(쿠팡)가 붙는다'는 기사는 끝내 찾지 못했다. 신문사는 대개 최종판(대개 밤중에 서너 차례 판갈이를 한다)만 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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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굳이 옛날 얘기를 꺼낸 것은 아픈 추억이 생각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권위주의를 청산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기도 하다. 올해 초 디캠프 센터장을 맡은 이후 철저하게 ‘권위 파괴’를 시작했다.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센터가 권위주의 냄새가 나서는 안되고 그런 식으로 일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관련 책도 읽어보고 강연도 들었는데,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세계는 지금 창의성 경쟁을 벌이고 있다. 누가 먼저 창의적인 제품/서비스를 내놓고 시장을 선점하느냐가 매우 중요해졌다. 정보기술(IT)이 전통산업과 결합하면서 모든 산업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이 혁신을 외면하는 전통기업은 살아남기 어려운 국면으로 가고 있다. 혁신을 하려면 젊은이들의 창의성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의 권위주의와 수직적 사고다. “하라면 하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식의 상사가 버티고 있는 한 혁신을 기대하긴 어렵다. 상사는 상석에 앉아 장황하게 잔소리를 하고 아이디어를 내야 할 젊은이들은 머리를 박은 채 낙서만 하는 회의 모습… 아직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젊은이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낡은 경험을 자랑삼아 장황하게 늘어놓는 상사. 이른바 “꼰대”다. 꼭 나이가 기준은 아니다. 환갑을 넘긴 사람 중에도 혁신적인 이가 있고, 40대 젊은이 중에도 꼰대는 있다. 아무튼… 꼰대들이 변해야 혁신은 가능하다. 혁신하려면 꼰대들이 스스로 변하든지 꼰대들을 밀어내는 수밖에 없다. [광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