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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7일 일요일

500비디오스 양성호 대표의 ‘슬픈’ 창업 이야기

어떤 외국 여자든 만난지 1분내에 허그할 수 있는 남자, 쫄딱 망해 캐나다로 건너가서 풍찬노숙했고, 석달 동안 매일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영어를 배웠던 사람, 거기서 부동산 사업으로 제법 돈을 벌었다는 사람, 벤처투자자들이 사업계획서도 보지 않고 투자한 스타트업 창업자… 디캠프에 1년쯤 입주했다가 나간 500비디오스의 양성호 대표 얘기다.

양 대표가 지난 5일 한양대학교에서 대학생 170명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디캠프 교육 담당 김윤진 매니저가 하루 전에야 강연을 부탁했는 데도 양 대표는 기꺼이 수락했다. 당초 이날 강연해 주기로 했던 분이 갑작스레 “메르스 때문에 강연할 수 없다"고 알려오는 바람에 디캠프로서는 ‘히든카드'를 꺼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양 대표 강연은 한 편의 ‘슬픈 코메디’였다. 양 대표는 인생 밑바닥까지 추락했던 슬픈 과거를 웃겨 가면서 이야기했다. 학생들은 양 대표의 ‘슬픈 얘기’를 깔깔깔 웃으면서 들었다. 양 대표는 강연 중간중간 심플로우로 들어온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기도 했고 좋은 질문을 한 학생들에겐 선물을 주기도 했다. 양 대표 강연 중 일부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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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캐나다에서 부동산 사업으로 꽤 잘나가고 있을 때 월트디즈니에서 전화가 왔다. 임원이 놀러 가는데 펜션이 필요하다, 사진으론 좋은데 사진만으론 못 믿겠다, 비디오를 찍어서 보내주라. 이런 얘기였다. 비디오를 찍어 보내줬다. 그때 ‘비디오가 신뢰를 준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미래는 비디오가 주가 될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요즘 배달의민족 등록 업소용 비디오 찍는 사업을 하고 있다. 텍스트+사진으로 된 정보를 누군가 비디오로 옮겨줘야 하는데 일단 저렴해야 한다. GS샵과도 계약을 맺고 사진을 비디오로 바꿔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마이리얼트립도 우리 고객이다. 마이리얼트립에서는 가이드가 상품 아닌가. 소개 영상이 있으면 훨씬 신뢰가 간다.

다음달부터는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와도 함께 일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망설이느냐 실행하느냐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하는 사업은 특별한 게 아니다. 특별한 아이디어 가지고 했을 땐 항상 망했다. 아이디어가 좋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디어 없이 했을 때 성공 가능성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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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해서 성공도 했고 실패도 했다. 사업 망한 뒤 캐나다로 가서 제2의 인생을 살았다. 캐나다 생활은 배고품, 서러움, 오기. 이 세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 캐나다 가기 전 한국에서 사업 잘 됐다. 아주 잘 됐다. 기세등등했다. 외제차 타고 다니고… 마지막 순간 어떤 사람한테 사기를 당했다. 믿었던 회사 간부였다. 충격이 컸다.

캐나다로 떠났다. 그동안 쓰레기 같은 생활을 했구나 반성도 했다.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인생을 포맷해 버리고 싶었다. 내 자신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보기로 작심했다. 불법체류자 신분에 영어도 안되고… 해안가 어느 집, 2층침대 4개가 빼곡히 들어찬 작은 방. 월세 12만원. 여기서 기거했다. 먹는 문제. 같은 방에 세븐일레븐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었다. 일이 끝나면 먹을 것을 가져오곤 했다. 그걸 얻어먹고 살았다.

일단 영어를 배워야 했다. 통신회사 고객센터를 이용했다. 가입할 것처럼 전화를 걸면 친절하게 대해준다. 5분만에 끊은 날도 있고 45분 동안 얘기한 날도 있었다. 매일 고객센터에 전화 거는 게 일이었다. 수신자부담이라 공짜다. 상담원이 각국 사람이라 인도 발음, 호주 발음… 다 배울 수 있었다. 전화를 걸고 주주장창 얘기를 했다.

전화번호부를 뒤지면서 돈 버는 방법을 고민했다.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들 명단을 뽑았다. 깨알같이 프린트 해서 벽에 붙여놨다. 700명쯤 됐다. 위에서부터 한 명씩 전화를 걸었다. 이런 걸 “콜드콜”이라고 한다. 마구잡이로 들이댔다. 보수를 받지 않을 테니 일하게 해 달라고 졸랐다. 안됐다. 불법체류자 아닌가. 3개월 이상 이 짓을 했다.

어느날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남은 돈이 300만원쯤 됐다. 이 돈으로 부동산 임대할 테니 임대 요령을 알려달라고 했다. 콜드콜 시작한지 5개월쯤 됐을 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전화를 걸었는데 그 사람이 “한 번 오라"고 했다. 갔다. 가서 말했다. 300만원 렌탈은 하되 렌탈은 필요 없으니 부동산은 가져가고 일 좀 시켜달라고 했다.

키가 크고 까무잡잡한 사람인데 그때 나이가 56세였다. 그 양반이 “껄껄껄” 웃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따라갔다. 변기 고치는 일을 시켰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굉장히 유명한 회장이었다. 수백억대 자산가였는데 나를 기특하게 여겨 그때부터 데리고 다녔다. 아들이 내 또래인데 해외로 나가고 없어서 나를 아들처럼 여겼다. 변기 뚫는 일부터 시작해 시멘트 바르는 일도 했고… 이것저것 수리 일이라면 뭐든지 했다.

이 양반 투자회사는 낡은 고급 부동산을 사서 수리하고 인테리어를 새로 한 다음 비싸게 파는 일을 주로 했다. 일주일이든 한달이든 고급스런 가구로 멋지게 꾸며서 해외에서 온 사람들한테 임대도 하고 재판매도 했다. 나는 아저씨가 만원, 이만원 준 것을 모아서 차를 샀다. 60만원짜리였다.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문짝도 열리지 않고 안쪽에 테이프 붙이고… 그 차를 타고 열심히 일 다니면서 노하우를 배웠다.

다행히 이 분의 도움으로 취업비자를 받았고 돈도 많이 벌었다. 그 당시 밤마다 잠을 세 시간씩 자면서 부동산 매물을 분석했다. 누가 언제 얼마에 사서 얼마에 파는지… 이런 걸 분석하면 예상할 수 있고 예상이 비교적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사서 되팔고 사서 되팔고… 3년도 안돼 100억원 이상 벌었다. 물론 다 내 돈은 아니지만.

그때 갖고 싶은 차는 DBS였다. 제임스 본드가 007 영화에서 타고 나온 영국 수제차. 밤마다 이 차가 달리는 비디오를 봤다. 이걸 보면서 힘을 냈다. 정확히 3년만에 이 차를 샀다. 회장님과 같은 날 하나씩 샀다. 아버지와 아들처럼. 6억이란 돈을 주고. 그 뒤에 포르쉐도 샀고… 내 차가 세 대였다. 화려한 싱글 라이프. 정말 열심히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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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으로 돈을 벌다가 어떻게 창업 하게 됐느냐? 부동산 임대업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임대 사이트를 다 사용해 봤다. 그때 가장 잘나가는 홈어웨이닷컴 사이트도 사용해 봤는데 불편했다. 어느날 다른 사이트를 발견했다. 불편을 모두 없앤 사이트. 주인한테 전화를 걸었다. 샌프란시스코 회사. 에어비앤비. 공동창업자들이 사업을 시작한 아파트로 갔다. 제안을 했다. 니네 사진을 내가 다 찍어주겠다. 당시 나는 부동산 전문 사진 촬영 회사도 운영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같이 다니면서 제안했다.

캐나다로 돌아왔더니 답신이 왔다. 캐나다 파트너가 돼 달라는. 그래서 에어비앤비 사진 촬영 파트너로 일했다. 에어비앤비는 온라인으로 창업을 했지만 창업 초기엔 오프라인 일도 많이 했다. 벼룩시장도 운영했다. 온라인 회사가 왜 이런 것을 할까? 나중에 깨달았다. 온라인 사업은 오프라인에서 풀어야 한다는 것을. 에어비앤비의 성공을 지켜보면서 ‘확장성 있는 사업’이라야 신바람이 나는구나, 확장성 있는 일,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연계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창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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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대표가 강의하는 동안 질문이 쇄도했다. ‘해외로 나가지 않고 인생을 포맷할 수는 없나요?’ ‘외국 여자랑 1분만에 허그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등등. 양 대표는 일일이 답해줬고 맘에 드는 질문을 한 학생들에겐 선물을 줬다. “내가 유쾌한 에너지를 주면 남도 나한테 유쾌한 에너지를 준다. 남한테 뭔가를 얻으려고만 하면 안된다. 유쾌한 에너지를 남한테 주면 유쾌한 에너지를 받게 된다.” 이런 이야기도 했다.

양 대표를 처음 만난 건 올해 초 핀란드 대사관저 만찬에서였다. 누군가 “센터장님, 사진 찍어 드릴께요" 하면서 들이댔다. 느낌이 좋았다. 알고 보니 디캠프에 입주해 있는 스타트업 대표였다. 양성호. 그 후 지난 3월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SXSW 2015’에 함께 다녀왔다. 양 대표는 외국인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포옹하며 요란을 떨기도 했다. 나중에 “친구인가요?”라고 물으면 “처음 만난 사람”이라고 했다. 아픈 상처를 딛고 꿋꿋하게 일어서는 양성호 대표. 늘 옆에서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사진=김윤진) [광파리]

2015년 5월 26일 화요일

김봉진의 '디자인 경영'..."직원을 먼저 만족시켜라"

‘배달의민족’이라는 음식배달 서비스를 하는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가 지난 22일 한양대에서 ‘디자인 경영’이란 주제로 강연을 했다. 한양대 ‘벤처실천전략' 강좌를 맡고 있는 디캠프가 강사로 김 대표를 초청했다. 축제가 한창인 데다 금요일 오후라서 수강자가 적을까 은근히 걱정했는데 300명을 수용하는 강당이 거의 다 찼다. 김 대표 강연은 ‘창의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강연 내용 일부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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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류승용이 배달의민족 대표인 줄 아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광고. 김수현이나 전지현을 모델로 기용할까 생각도 했는데 안됐다. 류승용은 선뜻 받아줬다. 결과적으로 우리와 너무 잘 맞는다. ‘신의 한 수'란 말까지 들었다. 지난해 각종 광고대상을 받았다. 그러자 우리를 광고대행사인 줄 아는 사람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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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에서 2등은 의미가 없다. 1등 하는 요령이 있다. 예를 하나 들겠다. 샴푸 시장에서 1등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장을 좁히면 가능하다. 서울 샴푸 시장. 이것도 어려우면, 서울 남자 고등학교 샴푸 시장. 이것도 어려우면, 서울 남자 고등학교 비듬 억제 샴푸 시장… 이런 식으로 좁히면 1등을 할 수 있다. 마케팅 할 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 들면 아무도 만족 못하고 아무도 쓰지 않는 서비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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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카페베네 답십리점에서 창업했다. ‘주식회사 배달의민족’이라고 쓰고 싶었는데 이미 상표등록이 돼 있어서 등록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용감한형제들’이라고 지었다. 그때 생각하길, 왜 회사 이름이 ‘삼성'이어야 하고 ‘LG’여야만 하나? (음악 하는 사람들은) 용감한형제들, 신사동호랭이… 이런 걸 쓰는데 우리도 쓰면 안되나? 그래서 (용감한형제들을) 패러디해 ‘우아한형제들’이라고 지었다. 큰 뜻은 없었다. 초기에는 혼선도 많았다. (수신자가) ‘우아한 형님'이라고 씌인 택배를 받기도 했다.

고객 만족이 최고의 마케팅이다. 고객을 만족시키려면 먼저 직원을 만족시켜야 한다. 인터널 마케팅. 우리는 자신이 사랑을 받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본능적으로 안다.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으면 정성 들여서 끓였는지 대충 끓였는지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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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인터널 마케팅이 중요하다. 우리는 2011년에 ‘버켓 리스트’란 걸 만들어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회사가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걸 열거한 목록이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끝났는데 70% 정도 달성했다. 지금은 ‘버켓 리스트 2.0’을 진행하고 있다. 사옥을 짓는다면 어떤 사옥이 될른지 모델링 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회의실에 대해서도 고민해 봤다. 회의란 무엇인가? 회의실이란 무엇인가? 고민이 없으면 그냥 공간에 의자 놓고 회의를 한다. 사진(아래)을 봐라. 누가 팀장일 것 같냐? 창의적인 회의를 할 때는 제3자가 들어왔을 때 누가 보스인지 모를 정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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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스타 플레이어가 나오지 않게 경계를 많이 한다. 좋은 아이디어는 많은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축구에 비유하면 패스만 해 주는 선수도 있고 골을 넣는 선수도 있다. 골만 넣는 선수 10명으로 팀을 채우면 팀이 안 돌아간다. 회사에서는 연결해주고 증폭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주의깊게 보고 도와준다. 아이디어를 낸 직원한테 포상하진 않는다. 여러 사람이 같이 참여했는데 한 사람한테 상을 주면 소외감 느끼지 않겠느냐. 상 받은 사람은 자기만 잘난 줄 알 테고.

우리가 만든 글꼴은 70년대 80년대 간판 스타일이다. 한나체. 안 이쁘다. 그게 우리 글꼴의 특징이다. 한나는 큰딸 이름이다. 둘째는 주아. 다섯살. 나중에 커서 “왜 언니 글체만 있냐?’고 할까봐 주아체도 개발했다. 캔디크러시 광고에 나오는 글씨, 알바몬 광고에서 ‘이런 시급' 글씨가 주아체다. 매년 폰트를 하나씩 개발해 배급할 예정이다. 올해는 도현체를 개발하고 있다. ‘도현’은 우리 회사 직원 자녀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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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디자인'에 광고를 냈다. ‘잘 먹고 한 디자인이 때깔도 좋다'. 이런 카피였는데 월간 디자인 담당자가 이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때부터 잡지마다 거기에 맞는 배달 스토리를 담은 광고를 내기 시작했다. ‘경희야, 넌 먹을 때가 젤 이뻐’. 이 카피가 나온 사연은 이렇다. 우리 회사 주부 엔지니어한테 “언제 신랑이 이쁘다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그래서 카피로 채택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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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끝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기업의 끝은 안하는 것이다. 어떤 기업이든 망하지 않을 수 없다. 영원히 남을 수 있는 것은 문화다. 건강한 조직문화, 건강한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회사 왔을 때 더 즐겁고, 긍지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대기업 다니는 분들 회사 자랑 안한다. 이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 회사에는 구성원들을 돌봐주는 팀(피플팀)이 따로 있다. 평소 야근하는 것과 딸 생일에 야근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이런 세세한 것까지 챙겨주는 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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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진 대표 강연의 일부를 옮겼다. 강연을 들으면서 직원들의 창의성을 살리기 위해 많이 배려한다는 걸 느꼈다. 조직문화와 팀 플레이를 중시한다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강연이 끝난 직후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다. 중년의 여자분이 강단 앞으로 나와 “김 대표님 팬"이라며 마구 들이댔다. 한참동안 질문을 했고 한참동안 김 대표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 바람에 질문하려고 대기하던 학생 일부가 그냥 돌아가기도 했다. [광파리]

2015년 5월 4일 월요일

마이리얼트립 이동건 대표 “여행업계 에어비앤비 되겠다”

패키지 상품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가? 좋았는가? 값이 싸서 택했는데 자꾸 쇼핑을 강요해 짜증나진 않았는가? 그렇다고 배낭여행을 하기엔 위험이 크고, 모르는 것도 너무 많고… 제대로 된 해외여행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사업을 시작한 젊은이가 있다. 마이리얼트립 이동건 대표다. 3년 전 여행객과 가이드를 직접 연결해주는 마이리얼트립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대표는 최근 한양대에서 자신의 창업 스토리를 얘기했다. 대학교 3학년 때까지만 해도 창업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얘기, 군복무 시절 총기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 했고 그때 생각을 바꿨다는 얘기, 교환학생으로 독일에서 공부할 때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사업계획을 말했다가 핀잔을 들았다는 얘기, 여행 분야에서 에어비앤비 같은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얘기, 여행을 통해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하는 게 목표라는 얘기 등을 했다. 이 대표의 강연 내용을 간추린다. 디캠프+한양대의 '벤처실천전략' 과목 강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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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강연을 시작하면서 ‘파리 미식 투어 동영상'을 틀었다. 파리에서 파티쉐로 일하는 분이 여행 가이드로 활약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었다. 파리 여행 가서 맘에 드는 레스토랑 찾기도 어렵고 프랑스어를 읽을 줄 몰라 주문하기도 힘들지 않겠냐, 그런데 파티쉐로 일하는 분이 가이드 해 준다면 훨씬 쉽지 않겠다고 했다. 동감.


이어 기존 여행상품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 대표는 “여행업의 본질은 유통업이다"고 했다. “H여행사 여행상품이라고 해도 H여행사가 다 하는 게 아니다, 하청을 맡기고 재하청을 맡긴다, 여러 단계마다 수수료가 붙는다, 그런데도 싸게 팔면 이익을 내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현지에서 쇼핑을 통해 이익을 낼 수밖에 없다, 여행자는 싼 줄 알고 갔다가 당했다고 생각하고, 가이드는 자존심 상하고 자부심도 잃는다.”


이 대표의 설명. 여행을 혁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간 유통단계를 거치지 않고 여행자와 현지 가이드를 직접 연결함으로써 현지인과 함께 ‘진짜 여행(real trip)’을 즐길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이렇게 혁신하면 합리적인 가격으로 자신의 취향에 맞는 맞춤여행도 가능하다. 런던 가서 첼시 축구경기를 보는 것도 가능하다. 여행에서는 가격이 가장 중요한 건 아니다. 그 여행을 통해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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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얼트립에서는 앱을 통해 여행자가 가이드를 선택한다. 가이드는 현지에서 생업으로 가이드 하는 분도 있고, 학생 요리사 회사원 교사 등 다양하다. 재밌는 백그라운드가 있는 분들이 많다. 바르셀로나 ‘가우디 투어’에서는 건축학 박사가 안내한다. 수준이 다르다. 가이드가 여행을 직접 기획한다. 마이리얼트립은 개입하지 않는다. 중개만 잘 하면 된다. 여행은 한 시간짜리도 있고, 7박, 8박짜리도 있다.


마이리얼트립의 타깃은 작년 말까지만 해도 3, 40대였다. 지금은 다르다. 2, 30대가 주를 이룬다. 직장에 갓 들어간 젊은이들은 여행을 여유롭게 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회사에서 말단으로 시달리다 보니 힐링 하려고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 돈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왜 마이리얼트립을 쓰느냐?”고 물으면 “편해서"라고 답한다. 믿음직한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으니 안심하고 떠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이리얼트립은 2012년 7월 한국인 아웃바운드 서비스부터 시작했다. 나는 여행 분야에서 에어비앤비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여행 1등을 해 보자고 했고 궤도에 올랐다. 다음달에는 아시아권에 진출한다. 일본인이 대만 갈 때, 싱가포르 사람이 서울 올 때 마이리얼트립을 이용하게 하려 한다.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하는 게 마이리얼트립의 목표다. 지금까지 4300개의 여행 후기가 들어왔다.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고 일주일에 한 번씩 고객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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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사업을 시작했느냐?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나는 대학교 3학년 때까지는 사업은 절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략 컨설팅을 해 보고 싶었고 거기에 맞춰 준비했다. 2학년 마치고 입대했는데 사격할 때 탄창 넣어주는 총기탄약관리병이었다. 그런데 총기 사고가 터져 죽을 뻔 했다. 스물두 살. 그때 크게 느꼈다. 오늘 참거나 내일로 미루지 말자. 젊은 날에는 뭔가를 참으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훗날을 위해 참고 미루곤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운명이 끝나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했다. 교환학생으로 독일도 다녀왔다.


독일에서 친구들과 토론한 적이 있다. 한 사람씩 자신의 꿈에 대해 얘기했다. 당시 창업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때라 나는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계획을 들려줬다. 난 매킨지에 들어가 전략 컨설팅을 3년 할 거야, 스탠포드 가서 MBA도 할 거야, 그 다음엔 실리콘밸리에서 인맥을 쌓고, 귀국해 삼성전자에서 해외 세일즈도 경험할 거야, 이걸 바탕으로 내 사업을 할 거야. 이렇게 말했는데, 다들 “실망했다”고 했다. “사업 하고 싶다면서 왜 그렇게 빙 돌아가냐”는 거였다. 지금 사업을 시작하면 15년 고생을 해도 30대가 아니겠냐. 니가 말한대로 하면 시작 자체가 40대 아니냐.


그때 깨달았다. 사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빙빙 돌려고 했다는 것을.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사흘만에 사업자 등록을 했다. 대학교 3학년 때였는데 음악 사업을 1년쯤 했다. 그런데 잘 되진 않았다. 그래서 사업을 다음커뮤니케이션에 넘기고 새로운 사업을 하게 됐다. 그게 바로 마이리얼트립이다. 두번째 사업이다.


마이리얼트립 사업을 시작한 뒤 파리에 갔는데 퐁네프 다리에서 한국인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하는 게 보였다. 졸졸 따라가면서 지켜봤는데 마이리얼트립 가이드였다. “누구냐?”고 묻길래 “마이리얼트립 직원”이라고 했더니 질문이 쇄도했다. “아들이 마이리얼트립에 관심이 많다”면서 “밥이라도 같이 먹자"는 사람도 있었고, 이천에 사는 분은 나중에 쌀 한 포대를 보내왔다. 타이베이에서도 마이리얼트립 가이드를 맞딱뜨렸다. 그날은 세 차례나 마이리얼트립 가이드를 만났다. 이럴 때 사업에 대해 확신하게 됐다. 마이리얼트립을 잘 이용했다는 고객 후기를 받을 때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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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과 관련해 4단계로 내 생각을 얘기하겠다.


스텝 1. 팀 구성. 천재도 사업은 혼자는 못한다. 여러분은 아무래도 대학생 인맥에서 함께 사업할 사람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때 실수할 수 있다. 진지하게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술 마시다가 “나도 할께"란 말만 듣고 팀원 찾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게 아니다. 함께 하려는 사람은 나 만큼 고민을 많이 한 사람이어야 한다. 사업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과 사업을 같이 한다? 우리가 무얼 하려는지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스텝 2. 비즈니스 모델을 확실하게 정립하기.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면 ‘사업놀이'에 불과하다. 대학생들은 사업을 놀이처럼 하기 쉽다. 가볍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게 대학생 창업의 강점이면서 약점이다. 이걸 피하려면 고객이 누구인지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 어떤 고객을 잡을지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실수를 많이 한다. 고객을 뭉뚱그려서 잡기 쉽다. 그냥 “커피", 그냥 “힙합"... 이런 식이다. 현재 무엇이 문제인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뭔가? 그 대안은 효과적인가? 고객들이 그 대안을 택할 만큼 현재의 문제는 심각한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스텝 3. 제품/서비스 개발하기. 피드백을 받으면서 신속하게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린 스타트업. 첫번째 제품을 빨리 만들고 피드백 받고, 그 피드백으로 두번째 제품을 빨리 만들고 피드백 받고, 그 피드백으로 세번째 제품 빨리 만들고 피드백 받고… 이런 식으로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스텝 4. 자금조달. (이 부분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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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강연을 끝낸 뒤 학생들이 심플로우로 작성한 질문을 훑어보며 하나씩 답변했다. ‘가이드를 신뢰할 수 있냐?’, ‘고객과 가이드 간 외부거래를 어떻게 막나?’, ‘직원들 연봉은 얼마나 되나?’, ‘부전공으로 공부한 심리학이 사업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도시 셋만 들라면?’ 다양한 질문이 들어왔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10여명의 학생이 기다렸다가 이 대표랑 얘기를 나누고 나갔다. 학기 초만 해도 질문도 않고 네트워킹도 않더니… 많이 좋아진 것 같다. (마이리얼트립 링크합니다.) [광파리]

2015년 4월 11일 토요일

메이플스토리 개발자에서 K팝 전도사로... JJS미디어 이재석 대표


창업지원기관 디캠프 센터장으로 일하기 시작한지 오늘로 100일. 그동안 많은 창업자들을 만났고, 많은 투자자, 앤젤을 만났다. 많이 배웠다. 어제는 한양대에서 JJS미디어 이재석 대표의 강연을 들었다. ‘마이 뮤직 테이스트(My Music Taste)’란 서비스로 세계를 누비며 K팝 공연을 펼치는 사나이. ‘메이플스토리' 개발자에서 ‘K팝 전도사'로 변신한 이재석. 그의 강연은 한 편의 공연이었다. 학생들이 강단에 올라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웃음과 박수가 끊이질 않았다. 이 대표 수업의 단면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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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꼰대와 멘토의 차이는 딱 하나다. 질문했을 때 답변을 제대로 해 주는 사람은 멘토이고, 질문을 하지도 않았는 데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꼰대다. 나는 꼰대가 되기 싫다. 멘토가 되고 싶다. 수업시간에 질문을 많이 해 달라.”


“여러분, 메이플스토리를 아는가? 그 게임, 내가 만들었다. (우와!!!!) 진짜다. (학생들 웅성웅성). 나 혼자 만든 것은 아니고(ㅎㅎ) 초반에 20여명이 만들었는데 그 팀에서 일했다. 해외에서 코 묻은 돈을 벌기 위해 글로벌 런칭 팀에서 일했다. 인센티브도 받았다. 그 돈으로 창업할 수 있었다. 지금은 중학생들 코 묻은 돈을 벌고 있다.”


“카이스트에서 전기전자공학 전공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게임회사(넥슨) 들어가서 코 묻은 돈을 벌었다고 했는데, 지금은 음악과 기술을 조합하는 도전을 하고 있다. 메이플스토리 개발하면서 재미는 없었다. 서버가 마비됐는데 이해가 안됐다. 좀더 좋아하는 분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마이 뮤직 테이스트’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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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콜드플레이(4인조 영국 락 그룹)를 좋아하는 소년이 있었다. 내한해주길 기대했는데 이뤄지지 않았다. 한 번은 내한 소문이 있었다. 그래서 잔뜩 기대했다. 그러나 계획이 캔슬돼 버렸다. 실망이 너무 컸다. 그 소년이 바로 나다. 콘서트 관람 좋아하고 음악 감상도 좋아한다. 그런데 콘서트 시장은 발전이 없었다. 30년 전이나 50년 전이나 똑같다. 기술이 접목되지 않았다. 산업을 근본적으로 바꿔 보려는 시도는 없었다.”


“공연 기획자 입장에서 문제는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일지, 어떤 장소를 빌려야 할지. 고민부터 한다. 갬블(도박)이나 다름없다.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그러다 보니 캔슬되기 일쑤다. 기획사 사장이 돈 가지고 튀질 않나… 아티스트가 비행기를 타지 못해 캔슬되질 않나… 티켓이 예상 만큼 팔리지 않아 캔슬되기도 한다. 이렇게 수요 예측이 제대로 안된다는 게 문제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봤다. 팬들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 표를 미리 산다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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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음악시장은 연간 40조원 규모다. 이 가운데 공연이 55%를 차지한다. 음악 스트리밍 시장에 많은 업체들이 뛰어들고 있다. 나는 이 시장에는 신경 안쓴다. 공연 시장을 뒤엎으러 간다. 다행히 K팝 열풍이 대단하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하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상 우리 콘텐츠가 세계를 들었다 놨다 한 적이 있었는가? 빌보드 온라인 매거진에 K팝 섹션이 따로 있다. 특정 국가 장르를 따로 두기는 K팝이 처음이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유명한 실용음악학교에서는 K팝을 아예 정식 과목으로 채택했다. 여러분은 어떤 아티스트를 좋아하는가? 노래 한 소절을 해 봐라. 공연 티켓을 주겠다.”


티켓을 준다는 말에 학생들 술렁술렁. 07학번(헐! 몇 학년?) 남학생이 맨먼저 나와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를 불렀다. 박수와 환호. 이 학생은 마룬5 서울 공연 티켓 2장을 받아가며 좋아했다. 이어 “충남 서산에서 온 OOO” 학생이 빈지노 노래를 불러 마룬5 서울 공연 티켓 2장을 받아갔고… 전부 네 명의 학생이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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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이스트란 가수를 아는가? 안다면 손을 들어 봐라. (170명 중 10명 가량이 손을 들었다.) 이 정도다. 한국에서는 잘 모르는 가수다. 그런데 밖에서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뉴이스트의 페이스북 ‘좋아요'가 200만이 넘는다. 지난해 뉴이스트와 함께 파리 헬싱키 바르샤바 밀라노 등 유럽 5개 도시를 순회하며 공연했다. 블락B도 해외 공연 다녀왔고… 다음달 29일에는 LA에서 에픽하이 공연을 우리가 한다. 국가 도시 요금 등 간단한 서베이를 한 다음 공연을 기획한다. 공연 전에 공연 정보를 다 제공한다.”


“내가 ‘마이 뮤직 테이스트’ 서비스를 시작한지 1년 반이 됐다. 사용자는 40만명에 달했고, 30개 국가에서 50회 이상 공연을 했다. 2천석, 3천석짜리 공연도 했고, 100석 200석짜리 공연도 가능하다. 이 사진을 봐라. 메트로 신문 1면에 블락B 공연 사진이 실려 있다. 헬싱키에서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장면이다. 도대체 어떤 아티스트가 왔길래 이렇게 줄을 서나? 싶어서 사진을 찍어 1면에 실은 거다. 플랫폼 사업을 하려면 플랫폼 쓰는 사람들한테 굳이 설득하지 않아도 사용하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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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에 대해 말하겠다. 스타트업 업계는 전쟁터다. 총알이 어디서 어떻게 날아올지 모르고, 보급로가 차단되면 물자가 끊긴다. 인터넷도 필요하고, 월급도 줘야 하고, 총알(마케팅 비용 등등)도 필요하다. 각종 물자를 계속 끌어와야 하고, 날아오는 총알 피해가며 고지를 점령해야 한다. 대여섯명 별동대로 싸워야 한다. 네이버는 큰 성을 쌓아놓고 탱크로 몰려오고 구글은 드론으로 공격해 온다. 스타트업한테 물량전은 불가능하다. 전쟁에는 공성과 수성이 있다. 공성은 수성에 비해 3배의 물량이 필요하다. 그러니 스타트업은 게릴라전을 펼칠 수밖에 없다. 요즘 정부에서 스타트업 지원을 많이 해 주고 디캠프 같은 곳에서도 지원을 많이 해 준다. 이렇게 아파치를 띄워줄 때 작전을 펼쳐야 한다.”


“스타트업은 연애와 같다. 연애 잘하는 사람이 사업도 잘 한다. 재벌이 아닌 이상 내 힘으로 서비스를 만들어 가야 하는데 쉽지 않다. (필요하면) 투자를 받아야 한다. 내가 투자자한테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하다. 전략은 세 가지다. 첫번째는 내가 매우 섹시한 경우. 그래서 투자자가 투자 안하고는 배기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나는 서비스의 섹시함으로 접근했다. 두번째는 스마트함. 내가 스마트하거나 내 프로덕트가 스마트해야 한다. 자기 프로덕트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연애를 잘 못하는 분은 연애 잘하는 분을 CEO로 앉혀라. 투자를 받고도 계속 투자자가 도와주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가둔 물고기한테 밥을 안주는 상태가 되면 안된다.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가. 아이디어가 있어도 구현하지 않으면 소용 없다. 사라지고 만다. 내 아이디어는 아무한테도 말 안할 거야. 나만 알고 있다가 사업화할 거야. 이렇게 할 필요 없다. 아이디어는 누군가에게 말할수록 발전한다. 그걸 누가 구현하느냐가 중요하다. 구현 못하는 사람이 바보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 해라. 나는 꼰대가 되고 싶지 않다. 멘토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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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질의응답. 학생들은 심플로우를 이용해 몇 가지 설문에 답했다. 설문 응답자는 170명 중 120명이 넘었다. 질문도 수십개가 들어왔다. 이재석 대표는 대여섯개를 골라 답변했다. ‘MC로 투잡을 뛰셔도 되겠다'는 멘션도 올라왔다. 이 대표는 이걸 읽으며 웃었다. 실패 경험을 말해달라는 질문도 있었다. 이 대표는 잠깐 망설이다가 이렇게 답했다.


“스타트업은 하루에도 몇 번이든 성공과 실패를 반복한다. 실패라고 해도 성공으로 만들면 과정일 뿐이다. 주저앉으면 실패가 된다. 정말 실패할 뻔한 적도 있다. OOO 유럽 투어 때 첫 공연이 파리에서 예정돼 있었는데, OOO 멤버들이 우리를 ‘쉽게 요청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갑자기 라면이 먹고 싶다고 해서 끓여다 줬고, 밥을 먹는데 스탭까지 30명 가까이 몰려가서 식사를 했는데 전혀 고맙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당연한 일로 생각한 거다. 호텔로 돌아와 혼자 앉아 있는데… 내가 왜 이런 일을 하지? 후회가 됐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케어해 줘야 하나? 너무 힘들었다. 우리 스탭 중에 한국계 미국인도 있었는데, 해고해 달라고 나한테 통사정을 했다. 제발 해고해 주세요. 미국으로 돌아갈래요. 이건 아니잖아요. 나는 밤새 일하면서 이 친구가 창문에서 뛰어내릴까 노심초사했다. 그런데 다음날 OOO 멤버 한 명이 나한테 질문을 했다. ‘형은 전에 뭐했어요?’ 그래서 ‘메이플스토리 만들었다’고 답했다. 난리가 났다. 자기들도 메이플스토리 좋아했다고 했다. 어느 대학 나왔느냐? 카이스트 나왔다. 형, 메니저 몰래 술 한 잔 하러 가요…. 이런 식으로 바뀌었고 일이 술술 풀렸다. 스타트업은 늘 성공과 실패를 반복한다. 실패라 해도 성공으로 바꾸면 하나의 과정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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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난 뒤 20여명의 학생들이 이 대표한테 몰려와 이것저것 묻고 명함을 달라고 했다. 열기가 대단했다. 수업 진행을 담당하는 디캠프 김윤진 메니저한테 물어봤다. 원래 저렇게 강연을 잘하냐고. 매니저는 “이 대표 강연을 여러 번 들어봤는데 오늘 강연이 특히 인상적이다”고 했다. 이 대표를 처음 만난 건 지난달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행사장에서였다. 밝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 얘기를 나누다가 ‘한양대에서 강연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요청을 받아주고 멋진 강연을 해준 이 대표한테 감사한다. 공연으로 세계를 휘어잡는 날까지 응원하겠다. [광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