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지원기관 디캠프 센터장으로 일하기 시작한지 오늘로 100일. 그동안 많은 창업자들을 만났고, 많은 투자자, 앤젤을 만났다. 많이 배웠다. 어제는 한양대에서 JJS미디어 이재석 대표의 강연을 들었다. ‘마이 뮤직 테이스트(My Music Taste)’란 서비스로 세계를 누비며 K팝 공연을 펼치는 사나이. ‘메이플스토리' 개발자에서 ‘K팝 전도사'로 변신한 이재석. 그의 강연은 한 편의 공연이었다. 학생들이 강단에 올라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웃음과 박수가 끊이질 않았다. 이 대표 수업의 단면을 소개한다.
“내가 생각하는 꼰대와 멘토의 차이는 딱 하나다. 질문했을 때 답변을 제대로 해 주는 사람은 멘토이고, 질문을 하지도 않았는 데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꼰대다. 나는 꼰대가 되기 싫다. 멘토가 되고 싶다. 수업시간에 질문을 많이 해 달라.”
“여러분, 메이플스토리를 아는가? 그 게임, 내가 만들었다. (우와!!!!) 진짜다. (학생들 웅성웅성). 나 혼자 만든 것은 아니고(ㅎㅎ) 초반에 20여명이 만들었는데 그 팀에서 일했다. 해외에서 코 묻은 돈을 벌기 위해 글로벌 런칭 팀에서 일했다. 인센티브도 받았다. 그 돈으로 창업할 수 있었다. 지금은 중학생들 코 묻은 돈을 벌고 있다.”
“카이스트에서 전기전자공학 전공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게임회사(넥슨) 들어가서 코 묻은 돈을 벌었다고 했는데, 지금은 음악과 기술을 조합하는 도전을 하고 있다. 메이플스토리 개발하면서 재미는 없었다. 서버가 마비됐는데 이해가 안됐다. 좀더 좋아하는 분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마이 뮤직 테이스트’를 만들었다.”
“10년 전 콜드플레이(4인조 영국 락 그룹)를 좋아하는 소년이 있었다. 내한해주길 기대했는데 이뤄지지 않았다. 한 번은 내한 소문이 있었다. 그래서 잔뜩 기대했다. 그러나 계획이 캔슬돼 버렸다. 실망이 너무 컸다. 그 소년이 바로 나다. 콘서트 관람 좋아하고 음악 감상도 좋아한다. 그런데 콘서트 시장은 발전이 없었다. 30년 전이나 50년 전이나 똑같다. 기술이 접목되지 않았다. 산업을 근본적으로 바꿔 보려는 시도는 없었다.”
“공연 기획자 입장에서 문제는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일지, 어떤 장소를 빌려야 할지. 고민부터 한다. 갬블(도박)이나 다름없다.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그러다 보니 캔슬되기 일쑤다. 기획사 사장이 돈 가지고 튀질 않나… 아티스트가 비행기를 타지 못해 캔슬되질 않나… 티켓이 예상 만큼 팔리지 않아 캔슬되기도 한다. 이렇게 수요 예측이 제대로 안된다는 게 문제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봤다. 팬들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 표를 미리 산다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 게 아닌가.”
“전 세계 음악시장은 연간 40조원 규모다. 이 가운데 공연이 55%를 차지한다. 음악 스트리밍 시장에 많은 업체들이 뛰어들고 있다. 나는 이 시장에는 신경 안쓴다. 공연 시장을 뒤엎으러 간다. 다행히 K팝 열풍이 대단하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하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상 우리 콘텐츠가 세계를 들었다 놨다 한 적이 있었는가? 빌보드 온라인 매거진에 K팝 섹션이 따로 있다. 특정 국가 장르를 따로 두기는 K팝이 처음이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유명한 실용음악학교에서는 K팝을 아예 정식 과목으로 채택했다. 여러분은 어떤 아티스트를 좋아하는가? 노래 한 소절을 해 봐라. 공연 티켓을 주겠다.”
티켓을 준다는 말에 학생들 술렁술렁. 07학번(헐! 몇 학년?) 남학생이 맨먼저 나와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를 불렀다. 박수와 환호. 이 학생은 마룬5 서울 공연 티켓 2장을 받아가며 좋아했다. 이어 “충남 서산에서 온 OOO” 학생이 빈지노 노래를 불러 마룬5 서울 공연 티켓 2장을 받아갔고… 전부 네 명의 학생이 노래를 불렀다.
“뉴이스트란 가수를 아는가? 안다면 손을 들어 봐라. (170명 중 10명 가량이 손을 들었다.) 이 정도다. 한국에서는 잘 모르는 가수다. 그런데 밖에서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뉴이스트의 페이스북 ‘좋아요'가 200만이 넘는다. 지난해 뉴이스트와 함께 파리 헬싱키 바르샤바 밀라노 등 유럽 5개 도시를 순회하며 공연했다. 블락B도 해외 공연 다녀왔고… 다음달 29일에는 LA에서 에픽하이 공연을 우리가 한다. 국가 도시 요금 등 간단한 서베이를 한 다음 공연을 기획한다. 공연 전에 공연 정보를 다 제공한다.”
“내가 ‘마이 뮤직 테이스트’ 서비스를 시작한지 1년 반이 됐다. 사용자는 40만명에 달했고, 30개 국가에서 50회 이상 공연을 했다. 2천석, 3천석짜리 공연도 했고, 100석 200석짜리 공연도 가능하다. 이 사진을 봐라. 메트로 신문 1면에 블락B 공연 사진이 실려 있다. 헬싱키에서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장면이다. 도대체 어떤 아티스트가 왔길래 이렇게 줄을 서나? 싶어서 사진을 찍어 1면에 실은 거다. 플랫폼 사업을 하려면 플랫폼 쓰는 사람들한테 굳이 설득하지 않아도 사용하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창업에 대해 말하겠다. 스타트업 업계는 전쟁터다. 총알이 어디서 어떻게 날아올지 모르고, 보급로가 차단되면 물자가 끊긴다. 인터넷도 필요하고, 월급도 줘야 하고, 총알(마케팅 비용 등등)도 필요하다. 각종 물자를 계속 끌어와야 하고, 날아오는 총알 피해가며 고지를 점령해야 한다. 대여섯명 별동대로 싸워야 한다. 네이버는 큰 성을 쌓아놓고 탱크로 몰려오고 구글은 드론으로 공격해 온다. 스타트업한테 물량전은 불가능하다. 전쟁에는 공성과 수성이 있다. 공성은 수성에 비해 3배의 물량이 필요하다. 그러니 스타트업은 게릴라전을 펼칠 수밖에 없다. 요즘 정부에서 스타트업 지원을 많이 해 주고 디캠프 같은 곳에서도 지원을 많이 해 준다. 이렇게 아파치를 띄워줄 때 작전을 펼쳐야 한다.”
“스타트업은 연애와 같다. 연애 잘하는 사람이 사업도 잘 한다. 재벌이 아닌 이상 내 힘으로 서비스를 만들어 가야 하는데 쉽지 않다. (필요하면) 투자를 받아야 한다. 내가 투자자한테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하다. 전략은 세 가지다. 첫번째는 내가 매우 섹시한 경우. 그래서 투자자가 투자 안하고는 배기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나는 서비스의 섹시함으로 접근했다. 두번째는 스마트함. 내가 스마트하거나 내 프로덕트가 스마트해야 한다. 자기 프로덕트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연애를 잘 못하는 분은 연애 잘하는 분을 CEO로 앉혀라. 투자를 받고도 계속 투자자가 도와주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가둔 물고기한테 밥을 안주는 상태가 되면 안된다.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가. 아이디어가 있어도 구현하지 않으면 소용 없다. 사라지고 만다. 내 아이디어는 아무한테도 말 안할 거야. 나만 알고 있다가 사업화할 거야. 이렇게 할 필요 없다. 아이디어는 누군가에게 말할수록 발전한다. 그걸 누가 구현하느냐가 중요하다. 구현 못하는 사람이 바보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 해라. 나는 꼰대가 되고 싶지 않다. 멘토가 되고 싶다.”
이어 질의응답. 학생들은 심플로우를 이용해 몇 가지 설문에 답했다. 설문 응답자는 170명 중 120명이 넘었다. 질문도 수십개가 들어왔다. 이재석 대표는 대여섯개를 골라 답변했다. ‘MC로 투잡을 뛰셔도 되겠다'는 멘션도 올라왔다. 이 대표는 이걸 읽으며 웃었다. 실패 경험을 말해달라는 질문도 있었다. 이 대표는 잠깐 망설이다가 이렇게 답했다.
“스타트업은 하루에도 몇 번이든 성공과 실패를 반복한다. 실패라고 해도 성공으로 만들면 과정일 뿐이다. 주저앉으면 실패가 된다. 정말 실패할 뻔한 적도 있다. OOO 유럽 투어 때 첫 공연이 파리에서 예정돼 있었는데, OOO 멤버들이 우리를 ‘쉽게 요청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갑자기 라면이 먹고 싶다고 해서 끓여다 줬고, 밥을 먹는데 스탭까지 30명 가까이 몰려가서 식사를 했는데 전혀 고맙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당연한 일로 생각한 거다. 호텔로 돌아와 혼자 앉아 있는데… 내가 왜 이런 일을 하지? 후회가 됐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케어해 줘야 하나? 너무 힘들었다. 우리 스탭 중에 한국계 미국인도 있었는데, 해고해 달라고 나한테 통사정을 했다. 제발 해고해 주세요. 미국으로 돌아갈래요. 이건 아니잖아요. 나는 밤새 일하면서 이 친구가 창문에서 뛰어내릴까 노심초사했다. 그런데 다음날 OOO 멤버 한 명이 나한테 질문을 했다. ‘형은 전에 뭐했어요?’ 그래서 ‘메이플스토리 만들었다’고 답했다. 난리가 났다. 자기들도 메이플스토리 좋아했다고 했다. 어느 대학 나왔느냐? 카이스트 나왔다. 형, 메니저 몰래 술 한 잔 하러 가요…. 이런 식으로 바뀌었고 일이 술술 풀렸다. 스타트업은 늘 성공과 실패를 반복한다. 실패라 해도 성공으로 바꾸면 하나의 과정으로 바뀐다.”
수업이 끝난 뒤 20여명의 학생들이 이 대표한테 몰려와 이것저것 묻고 명함을 달라고 했다. 열기가 대단했다. 수업 진행을 담당하는 디캠프 김윤진 메니저한테 물어봤다. 원래 저렇게 강연을 잘하냐고. 매니저는 “이 대표 강연을 여러 번 들어봤는데 오늘 강연이 특히 인상적이다”고 했다. 이 대표를 처음 만난 건 지난달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행사장에서였다. 밝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 얘기를 나누다가 ‘한양대에서 강연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요청을 받아주고 멋진 강연을 해준 이 대표한테 감사한다. 공연으로 세계를 휘어잡는 날까지 응원하겠다. [광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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