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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8일 화요일

알리바바 “빅데이터 분석해 DT시대 주도하겠다"

중국 항조우에 있는 알리바바 본사를 어제 방문했다. 중국 정부 초청을 받은 8명의 기자/블로거들이 함께 찾아갔다. 항조우 시내 호텔에서 버스로 출발했는데 내년 G20 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곳곳에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하철 공사도 벌이고 아파트단지도 짓고… 한 시간쯤 가자 건물단지가 나타났다. 건물마다 큼지막히 1, 2, 3, 4, 5… 숫자가 씌여 있었다. 대학 캠퍼스인가 생각했는데, 알리바바 본사였다.

정문에서 내려 건물로 둘러싸인 한복판을 가로질러 갔다. 한참 동안 걸었다. 어느 건물 앞에는 여러 사람이 노를 젓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협력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남자 셋이 벌거벗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조형물도 있었다. 회사가 커져도 겸손하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뜻도 담고 있고 심사숙고하라는 뜻도 담고 있다고 했다.


알리바바 측 브리핑 내용 중 기억에 남는 것만 메모한다.

회사 소개 동영상. 지체장애인이 타오바오 덕분에 자기 그림을 팔 수 있게 됐다고 말하는 대목이랑 우표 20만장을 보유한 노인이 타오바오를 통해 판매한다는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전자상거래가 누군가에겐 기회겠구나… 이런 생각. 창업자 마윈 회장은 102년 영속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아파트에서 창업할 때 했던 그 유명한 말도 했다. “오늘은 어렵다, 내일은 더 어렵다, 그러나 모레는 아름답다.” (Today is difficult, tomorrow is more difficult, but the day after tomorrow is beautiful). 사람들은 대개 내일 밤 죽는다. 알리바바 사람들은 모레 아침 밝은 해를 볼 것이다.

알리바바. 1999년 마윈이 친구 17명과 함께 항주에서 창업한 기업. 지금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비전은 어디서나 누구나 쉽게 사업 할 수 있게 하는 것. 알리바바는 중소기업들이 전자상거래를 원활하게 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서비스다. 알리바바의 비전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데이터 공유 플랫폼, 2) 102년 동안 지속하는 기업, 3)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기업. 알리바바는 B2B, B2C, C2C 모두 갖췄다.

B2B는 알리바바닷컴과 1688닷컴에서 한다. 알리바바닷컴은 1999년에 시작했고, 현재 217개 국가/지역에서 6천만명의 소비자/공급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국 인도 영국이 가장 큰 소비시장. 국내에서는 1688닷컴이 B2B를 이끈다. 얼마나 많은 중소기업이 참여하느냐? 현재 743만명. 오후 1~3시엔 1300만~1500만명에 달한다.

B2C와 C2C는 타오바오와 티몰에서 서비스 한다. 액티브 바이어가 3억8600만, 액티브 셀러는 850만… 타오바오는 2003년 이베이와 비슷한 형태로 시작했고, 티몰은 2008년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 11월11일 광군제(솔로데이) 때 매출은 912억 위안(16조5천억원)을 기록했다. 12분만에 100억 위안(1조8천억원)을 찍었다. 지역별로는 광동성 저장성 상하이가 가장 높다. 제조업체가 많이 분포돼 있기 때문.


알리페이. 새로운 핵심사업이다. 지급결제, 대출, 펀드, 투자 등 종합금융업을 한다. 알리페이는 2004년 시작한 지급결제 서비스. 그때는 중국엔 마땅한 결제시스템이 없었다. 신용카드도 없었고 구매자-판매자 간 믿음도 없었다. 알리페이는 소비자가 구매하면 바로 판매자에게 돈을 주지 않고 배송이 끝나면 돈을 전해주는 (에스크로) 방식을 택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온라인 사기를 막았고 중국인들의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었다. 작년 기준으로 알리페이 회원은 9억명이고 매일 6억명이 알리페이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알리페이로 가스비 수도세 등 공과금도 납부한다.

차이니아오 익스프레스. 2013년에 시작한 물류 서비스다. 중소기업의 물류를 돕기 위해 시작했다. 차이니아오는 ‘풋내기'를 뜻한다. 마윈도 전에 “나도 원래 풋내기에 불과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현재 15개 물류/운송업체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617개 물류 허브를 구축했다. 창고를 짓고 배송차량을 확보하는 대신 물류업체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했다. 차이나 로지스틱스는 224개 국가에 배송 가능하다.

“DT 시대”. 마윈이 자주 하는 신조어다. DT는 데이터 테크놀로지. IT 시대가 가고 DT 시대가 온다. 누가 고객 데이터를 잘 활용해 고객 니즈에 부응하느냐가 성공을 좌우할 것이다. 알리바바는 중국 선전, 홍콩, 베이징, 칭타오와 실리콘밸리, 싱가포르에 데이터센터를 지었고, 독일 일본에도 데이터센터를 지으려고 한다. 2009년 클라우드 컴퓨팅을 도입했는데 그때는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상상도 못했다. 이제는 빅데이터가 모든 업무의 핵심이다. 빅데이터를 분석하면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예측할 수 있다.

알리바바의 업무 4가지를 트라이앵글 형태로 표현할 수 있다. 중앙에 빅데이터가 있고, 양 옆에 금융과 유통이 있고, 위에는 전자상거래가 자리잡고 있다. 이밖에 “2H” 사업도 한다. 건강(health)과 기쁨(happiness) 비즈니스. 기쁨 비즈니스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말한다. 그리고 알리바바는 세계화를 지향한다. 모든 게 세계화를 향해 간다.


나중에 들은 얘기. 알리바바가 추구하는 3대 방향. 첫째 세계화, 둘째 지역개발(local development), 셋째 빅데이터. 여기서 ‘지역개발’이 눈에 띈다.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활용해 지역개발을 돕겠다는 뜻일 텐데, 세계화와 지역개발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게 이채롭다. 전자상거래와 물류를 중시하는 기업답게 빅데이터를 강조하는 대목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중국 국내는 24시간, 해외는 72시간 배송이 목표라고 했다.

알리바바가 강조한 것은 전자상거래, 알리페이, 그리고 빅데이터였다. 전자상거래를 하다 보니 알리페이가 필요해서 만들었고, 이제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고객이 무얼 원하는지 정확하게 분석해 만족을 높이겠다는 전략. 아마존도 그렇고… 전자상거래 업체는 어디든 빅데이터를 강조한다. 빅데이터를 분석해 유통을 혁신하겠다는 얘기다. 시간이 부족해 알리바바에 관해 자세한 얘기를 듣지 못한 게 아쉬웠다. /광파리


2014년 5월 12일 월요일

잭 마, 영어강사 그만두고 172조원짜리 기업을 일군 사내

잭 마(馬雲). 1964년생, 한국나이 50세. 알리바바 창업자이자 회장. 알리바바가 미국에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면서 잭 마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잭 마는 항조우에서 태어났고, 대학입시에서 두 번 낙방, 입사시험에서도 번번히 고배를 마셨죠. 항조우 어느 대학에서 월급 12달러 받고 영어/무역 가르쳤던 그가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인이 됐는지.
몇일 전 비즈니스 인사이더에서 잭 마에 관한 글을 재밌게 읽었는데 짬을 내지 못해 이제야 간단히 소개할까 합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아마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를 간추린 게 아닌가 싶은데 제대로 알고 싶다면 원문을 찾아서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 글을 중심으로 잭 마가 어떤 인물인지 정리합니다. 위키피디아도 참고했습니다.
잭 마는 20대 후반 대학강사를 그만두고 통역회사를 차렸습니다. 1995년. 한국나이 서른한 살 때 사업 차 처음으로 미국에 갔는데 친구가 “인터넷”이란 것을 알려줬다고 합니다. 거의 모든 것이 인터넷에 있다는 말과 함께. 잭 마는 인터넷에서 ‘맥주'를 검색했답니다. 그런데 중국어로는 아무 것도 뜨지 않더래요. 영어로만 떴겠죠.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중국 기업 명단을 담은 ‘차이나 페이지스'라는 인터넷 회사를 차렸습니다. 중국 최초의 인터넷 관련 회사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성공하진 못했습니다. 4년 후 두번째 인터넷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게 바로 알리바바입니다. 지난 6일 미국에서 IPO를 신청했는데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라고 해 화제가 됐습니다.
알리바바는 전체 주식의 12%를 공개합니다. 이를 위해 알리바바 기업가치를 평가했더니 1680억 달러(=172조원). 이것의 12%니까 200억 달러쯤 됩니다. 그러니까 단숨에 미국 증시에서 20조원을 빨아들이는 겁니다. 종전 최대 IPO는 196억5천만 달러. 잭 마의 지분은 8.9%. 가치평가가 제대로 됐다면 150억 달러, 15조원이 넘습니다.
잭 마는 대학입시에서 두 차례나 낙방했다고 합니다. 알리바바를 설립한 뒤에도 교사가 되려고 공부했고, 아직도 코딩 할 줄 모른다고 합니다. 2000년대 중반 알리바바가 중국 시장에서 미국 이베이와 경쟁할 때 언론은 그를 “미친 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말하는 매너가 점잖지 않고 목표가 터무니없게 들렸기 때문입니다.
잭 마는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때도 왜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싸움닭”이었다고 하네요. 자기보다 큰 상대도 결코 무서워한 적이 없다고. 외국인 관광객들한테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답니다. 외국인을 만나 영어를 배워볼 요량으로 매일 호텔로 가곤 했다고 합니다. 영어 방송을 들으려고 라디오도 샀다니까 집념이 정말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학을 못했다네요. 수학 점수가 낮아 대학입시에서 두 차례 낙방. 세번째 도전 끝에 항조우사범대학에 들어갔고 1988년에 졸업했습니다. 졸업 직후엔 KFC 매장 매니저를 포함, 여러 군데 지원서를 냈지만 거절당했답니다. 대학입시에서 낙방, 입사시험에서 또 낙방. 그래서 대학 영어강사를 했는데 월급이 12달러=1만3천원.
어렸을 땐 싸움닭, 청소년기엔 입시 낙방, 입사 낙방.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러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중국에서 수출 붐이 일면서 영어 잘하는 사람이 실력 발휘할 때가 온 겁니다. 잭 마는 통역회사를 설립했고, 1995년 사업차 미국을 방문했는데 거기서 인터넷이란 걸 처음 접하고 중국에 돌아가 인터넷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처음에 시도했던 ‘차이나 페이지스’는 별로였다고 합니다. 1995년은 사실 중국에서 인터넷 붐이 일기엔 너무 빨랐습니다. 한국에서 이재웅씨가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설립한 해가 1995년이고, 이해진씨가 네이버 설립한 해가 1999년이었으니까요. 잭 마는 4년 후인 1999년 미국 닷컴 붐을 보고 두번째 인터넷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잭 마는 친구 17명을 아파트로 불러들여 알리바바닷컴(Alibaba.com)이라는 온라인 장터를 만들었습니다. 수출업자들이 제품을 등록하면 각국의 바이어들이 둘러보고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인데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10월 골드만삭스가 500만 달러, 소프트뱅크가 2천만달러를 투자하는 등 자금도 몰려들어왔습니다.
잭 마는 말솜씨가 좋다고 합니다. 그가 자신의 꿈에 관해 얘기하면 빠져들게 된다고. 동기부여도 잘했던 것 같습니다. 가족처럼 똘똘 뭉치도록 리더십을 발휘했다네요. “우리는 젊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직원들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잭 마는 부모의 성향을 물려받아서 그런지 무대에 올라 재주 부리길 좋아했고 회사 분위기를 쾌활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매년 큰 강당에 임직원들을 모아놓고 장기자랑대회를 연답니다. 직원들은 여기에 참가하려고 수주 동안 연습하고. 또 매년 새로 결혼한 임직원들을 웨딩복 입은 상태로 모아놓고 축하해 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초기에는 실수도 있었습니다. 회사는 급성장했고 돈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2001년 알리바바 미국사무소를 폐쇄하고 국제담당부서 직원들을 전원 해고했습니다. 그러나 잭 마가 모험을 감행했기에 2000년대 중반 이베이의 중국 장악을 막을 수 있었죠. 타오바오(Taobao)는 세계적으로 트래픽 20위 안에 드는 사이트가 됐고 지난해에는 알리바바의 티몰(Tmall)과 합쳐 거래금액이 240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246조원.
잭 마는 2013년 CEO에서 물러났습니다. 후임은 부사장으로 일했던 조나단 류. 잭 마는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CEO에서 물러나면 더 편할 줄 알았는데, 회장이, 좋은 회장이 되려면 CEO보다 훨씬 더 바빠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답니다. 잭 마는 미국에서 기업공개(IPO)를 신청한 뒤 직원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고 합니다.
“유례없이 힘든 일이 닥치고 압박이 가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극복하고 우리의 미션과 문화를 지켜나갈 것이다", “우리가 살아남았던 것은 전략이 탁월했기 때문도 아니고 일을 잘했기 때문도 아니다, ‘세계 어디서든 비즈니스를 좀더 편히 하도록 만든다'는 우리의 미션을 고수했고 ‘고객우선' 가치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잭 마와 알리바바의 성공스토리를 담은 영화 ‘양쯔강의 악어---알리바바 이야기'가 오는 28일 인터넷에서 공개됩니다. Crocodile in the Yangtze - The Alibaba Story. 분량은 77분. 그렇게 긴 편은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일제히 발매합니다. 그리고... 알리바바가 한국 시장에 진출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그때가 디면 '중국 직구'가 유행하겠죠.
잭 마에 관한 글을 읽다 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잭 마라는 사람, 정말 대단합니다. 왜소한 싸움닭, 대학입시와 입사시험에서 번번히 낙방… 그러나 자기보다 훨씬 큰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영어를 배우려고 매일 호텔을 들락거렸고, 회사 분위기 띄우려고 분장 하고 무대에 설 줄도 알았고... 근성과 정열의 기업인이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왜 이런 스타 기업인이 없는지 안타깝기도 합니다. 스타가 없는 건 아니겠죠. 이해진도 있고, 김범수도 있고, 김정주도 있고… 그러나 국내 성공 테크 기업인들은 한결같이 전면에 나서길 꺼립니다. 스타 기업인을 껴안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 탓도 있겠죠. 스타 기업인이 많이 나와야 젊은이들이 이들처럼 되려고 뛰어들 텐데…
알리바바가 이베이를 물리치고 중국 시장을 지켜냈다는 부분… 한국에도 옥션이 있었죠, 이베이에 넘어갔지만. 네이버가 구글의 한국 시장 장악을 막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네이버의 폐쇄적인 시스템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아무튼, 테크 분야에서 2000년 전후의 활기를 되찾고 스타 기업인이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한 가지 덧붙입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나 월스트리트저널 사이트에 접속하면 잭 마의 어린 시절 사진, 알리바바 초창기의 사진이 많이 있습니다. 저작권 때문에 이런 사진을 올리지 못하고 ‘양쯔강의 악마' 트레일러 화면을 캡처해 첨부합니다. [광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