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이 ‘스타트업 리포트' 면을 신설했다. 매주 한 페이지를 털어서 스타트업 소식을 싣는다. 광파리도 격주로 칼럼을 쓰기로 했다. 기자 그만두고 나서 “좋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기사 안 써서 좋다"고 답했다. 그런데 다시 글을 쓴다. 오늘자 신문에 두 번째 칼럼을 실었다. 그런데 종이신문은 제약이 많다. 한정된 지면에 글을 쑤셔넣어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글을 반토막 내기도 한다. 티가 나지 않게 편집자가 문장을 바꾸기도 한다. 원문을 블로그에 남긴다. (김광현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D.CAMP) 센터장)
미국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와 로켓 발사 회사 스페이스X를 이끌고 있는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45)는 ‘지독한 일벌레’다. 일주일에 100시간 일한다고 알려졌다. 최근에는 컨퍼런스콜에서 “전기자동차 모델X 생산라인 끝에 책상을 놓고 일한다", “회의실에 슬리핑백을 놓고 자주 사용한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중국 선전에 로열(柔宇科技)이라는 디스플레이 제조 스타트업이 있는데 창업자인 류지홍 CEO(33)도 대단한 일벌레다. 2012년 창업 직후엔 하루 18시간씩 일했다고 한다. 새벽 2시, 3시에 이메일을 보내기 일쑤였고 이런 날도 맨 먼저 출근했다. 로열이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인 스타트업) 반열에 오른 지금도 변함이 없다.
소셜 네트워크 공간에서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면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그런 것은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다'느니 ‘그래서 이혼 당하지 않았느냐'는 반박을 받는다. 젊은 창업자한테 “2000년 전후 ‘IT(정보기술) 붐' 때는 ‘벤처'라고 하면 라면 먹고 날밤 까기 일쑤였다"고 말했다가 “그런 얘기 하면 ‘꼰대' 취급 받는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이해한다. ‘IT 붐'이 꺼지고 ‘창업 암흑기'가 10년 이상 계속되는 동안 개발자들은 하청, 재하청을 받아 일하는 ‘노예’로 전락했다.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월화수목금금금"이란 말이 유행했고 “코딩 하다 막히면 치킨집 사장한테 물어봐라"는 얘기도 나돌았다. 지금도 그 시절 생각하면 열불이 나는데 “하루 18시간" 운운해서야 되겠냐는 얘기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쓴소리를 해야겠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스타트업 놀이"란 말이 나도는 게 영 불편하다.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 뭐'. 이런 심정으로 창업하는 이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이 사람 미쳤나봐' 할 정도로 열정이 넘치는 창업자를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스타트업 놀이'를 하나 보다 싶을 때도 있다. 지난해 중견기업한테 1억원을 투자받은 대학생 스타트업이 1년도 안돼 “죄송하다"며 손을 털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허진호 트랜스링크코리아 대표는 최근 블로그에서 쓴소리를 했다. 허 대표는 자기 앞에서 “일곱 차례나 발표한 스타트업도 있었다”며 “본업에 충실하라"고 꾸짖었다. 다른 스타트업은 작년에만 세 차례나 경진대회에 참가하더니 한 번은 최종선발돼 전원이 유럽에 3개월이나 나가 있었다. 허 대표는 ‘결과적으로 시간만 낭비했다'며 ‘창업 후 어느 한 순간도 전시(戰時)가 아닌 적이 없는 게 스타트업이다'고 썼다.
물론 열정적인 창업자도 얼마든지 있다. 최근 디캠프(D.CAMP) 입주 스타트업 대표는 동료들 앞에서 서비스를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경험을 공유했다. 네 명이 방 하나를 얻어 함께 쓰면서 거의 매일 새벽 2시까지 개발했다고 털어놨다. 다른 창업자는 의료 분야 전문가랑 마주앉은 자리에서 폭넓은 식견을 과시해 깜짝 놀라게 했다. 자기 사업에 대해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연구했으면 저렇게 속속들이 알까 싶었다.
디캠프는 매월 ‘디데이(디캠프 데모데이)’를 열어 좋은 평가를 받은 스타트업들을 골라 보육공간에 입주시키고 종자돈을 투자한다. 작년에는 8개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했는데 돌이켜보면 공통점이 있다. 한결같이 열정이 넘치는 스타트업이었다. 방 문을 열 때마다 ‘얘들 뭐지? 미쳤나?’ 싶을 정도로 열정이 확 느껴지는 팀도 있었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투자자에게 “당신이 틀렸다"며 당당하게 맞선 젊은 창업자도 있었다.
지금 한국 산업경쟁력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수출 효자산업으로 꼽혔던 조선업의 경우 ‘국민 골치덩이’로 전락했다. 조선업 뿐이 아니다. 대부분 산업이 벼랑 끝으로 몰렸다. 산업경쟁력을 살리려면 송두리째 혁신하는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이 혁신하고, 대기업이 그 혁신 DNA를 흡수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확 바꿔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창업계에 뛰어든 젊은이들이 “미쳤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정을 보여줬으면 한다.
한 투자사 대표는 최근 “중국 갈 때마다 놀라곤 한다"고 말했다. 한 번은 금요일 밤 11시에 상담하러 갔다가 200명이 넘어 보이는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걸 보고 기겁했다. 이 대표는 “전에는 중국은 ‘만만디’, 한국은 ‘빨리빨리’였는데, 지금은 중국이 ‘빨리빨리’, 한국이 ‘만만디’다"며 “10년쯤 후 우리 아이들이 중국에서 물건 배달이나 하며 살게 될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게 기우(杞憂)였다는 것을 우리는 입증해야 한다. (끝)
(추가) 스트롱벤처스 배기홍 대표는 어느 날 페이스북에 이렇게 메모했다. ‘살짝 건드려도 포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아무리 밟아도 죽지 않고 잘 버티는 바퀴벌레 창업가들도 간혹 보인다.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 잘 되었으면.... 오늘도 한 명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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