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지원센터에서 일하다 보니 다양한 창업자를 만난다. 대기업 그만두고 창업한 사례는 널려 있고, 연인 창업, 부부 창업, 부자 창업 등 가족 창업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특이한 경우는 ‘부부 각자 창업'이다. ‘남편 따로, 부인 따로’ 창업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부부가 성공할 확률이 각각 10%라면 부부 모두 성공할 확률은 1%, 부부 한 사람이라도 성공할 확률은 19%. 확률이 높지 않은 데도 도전하는 부부 창업자가 꽤 있다.
부부 각자 창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황희승+이혜민 부부와 양주동+이효진 부부를 꼽을 수 있다. 황희승 잡플래닛 대표와 이혜민 핀다 대표는 서울 대왕중학교 짝궁이었고, 양주동 제이디랩 대표와 이효진 8퍼센트 대표는 포항공대 1년 선후배 사이다. 두 커플 모두 남편이 먼저 창업했고 부인이 대기업이나 은행을 그만두고 나와 따로 창업했다.
이혜민 대표는 따로 창업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황 대표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STX 지주회사 다니고 있었는데 주체적으로 일하고 싶었다. 그런데 황 대표랑 나는 성향이 비슷했다. 미래지향적이고 전략가였다. 그래서 따로 창업했고 각자 약점을 보완해줄 파트너를 찾아 사업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금융 전문가인 박흥민 씨와 함께 각자대표를 맡고 있다. 황희승 씨는 윤신근 씨와 공동대표로 잡플래닛을 이끈다.
이효진 대표는 우리은행 8년 다니다가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고 싶어서” 무작정 그만뒀다. 고민 끝에 실리콘밸리를 둘러봤고 P2P 대출 기업인 8퍼센트를 창업했다. 이 대표는 “창업이 힘들다는 건 알았지만 일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란 생각에 주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남편 회사에서 일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경험이 없고 인력이 부족해 남편 도움을 많이 받았다.
부부가 따로 창업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이효진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상대에 대한 이해 폭이 넓어졌다. 은행 다니던 시절 휴가 하루 전에 남편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 함께 떠나려던 계획이 깨진 적이 있다. 혼자 2박3일 여수 다녀왔는데 서운했다. 지금은 서로 그러려니 한다. 내가 주말에 일할 때는 남편이 아기를 봐 준다.”
이혜민 대표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각자 창업을 하다 보니 상대방에 대한 이해 폭이 매우 넓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남편과) 상담을 많이 한다. 스타트업을 경영하다 보면 주말에 투자자를 만나기도 하고, 면접 보러 출근하기도 한다. 집안에 큰 일이 있는데 참여 못할 때도 있다. 일반 회사원이라면 부부 간에도 서운할 텐데 서로 스타트업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문제가 안된다. 이런 것은 그냥 넘어간다.”
부부 공동 창업과 각자 창업에는 장・단점이 있다. 공동 창업의 경우엔 하루 종일 같은 일을 하면서 함께 지낼 수 있는 게 장점이지만 의견이 엇갈릴 때는 가정 불화가 직장 불화로 이어지기 쉽다.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둘이 싸우는 게 가장 큰 리스크다. 부부 각자 창업의 경우엔 이런 문제는 없다. 공동 창업이든 각자 창업이든 ‘개고생길'이란 점에서는 같다. 그 힘든 일을 해내는 부부 창업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