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엽 팬택그룹 부회장이 사퇴하겠다고 발표한 지난 6일 오후. 내막이 궁금했다. 왜 뜬금없이 그만두겠다고 했을까? 박 부회장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서너 차례 더 걸었다. 계속 받지 않았다. 문자도 보냈지만 답신이 없었다.
팬택이 쓰러져 워크아웃 들어갔을 때도 “니 전화는 받을게”라고 했던 그였다. 꼬박꼬박 문자 답신도 했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왜 답신을 안 할까? 참기 힘든 분노 때문일까? 왜? 친구로서 걱정이 앞섰다.
오후 7시.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북측에 있는 팬택 본사로 갔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본 끝에 박 부회장이 이미 회사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근 식당에서 저녁밥을 먹고 있는 후배 기자를 불러 차에 태웠다. 이젠 집으로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후배 기자가 주소를 알고 있었다. 팬택 본사를 떠나 제2자유로를 타고 파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후배와 박 부회장 얘기를 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1987년. 취재차 서울 구로공단에 있는 맥슨전자를 찾아가곤 했는데 마케팅 담당부장은 얘기할 때마다 김동연 과장(훗날 텔슨전자 회장)과 박병엽 신입사원을 옆에 앉게 했다. 김동연과 박병엽이 맥슨을 나와 무선호출기(삐삐) 사업으로 경쟁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도중에 길을 잃어 공동묘지 입구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바람에 밤 9시가 다 돼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교하 윈슬카운티. 아담한 단독주택단지였다. 초인종을 눌렀더니 누가 나왔다. 박 부회장이었다. “나여, 광파리(기자의 블로그 필명).” “에엥? 여기까지 뭐하러 왔어?”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거실에서는 세 사람이 탁자 주위에 둘러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섰다. 박 부회장 부인과 올해 환갑을 넘긴 누나, 그리고 연세대 세브란스 재활병원장인 의사 친구였다. 탁자를 보니 술잔과 안주가 있었다.
자리에 앉자 대뜸 술잔을 디밀었다. “후래자니까 석 잔 마셔라.” 박 부회장은 맥주잔에 보드카를 가득 따랐다. 보드카 병은 절반쯤 비어 있었다. 옷을 갈아입지 않았는지 양복 바지에 와이셔츠 차림이었고 눈은 충혈돼 있었다. 그는 “술만 마시자. 일 얘기는 하지 말자. 취재한다면 얘기 안 할거야”라고 했다.
박 부회장은 “기사 쓰지 마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결국 “그래 안 쓸게”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친구로서 약속을 지키고 싶지만 기자로서 전혀 안 쓸 수는 없다.
박 부회장은 보드카를 따라주면 단숨에 들이켰다. 천천히 마시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보드카가 떨어지자 맥주와 소주를 사오게 해 폭탄주를 만들어 돌렸다. 후배가 기자회견 때 안색이 안 좋았다고 말하자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요즘 속이 상해 있었어. 20일째야. 워크아웃 졸업하려고 6개월 전부터 준비했어. 그런데 종잡을 수가 없는 거야. 무지하게 노력해서 컨센서스를 모았거든. 기업은 말이야, 목숨보다 소중한 거야. 내가 아니어도 기업은 살아야 하잖아. 그런데 회수할 돈의 가치만 생각하는 거야. 입장 조율해서 다 해결했는데 막판에 걸린 거야. 끝까지 참고 기다렸는데 이젠 시간이 없잖아. 이것 해결 안 되면 가압류 들어올 테고. 수단이 없었어. 그만둔다고 말하는 것밖에 없었단 말이야. 회사는 살려야 하잖아. 답답하고 힘들었어.”
고개를 숙인 채 알쏭달쏭한 얘기를 계속 이어갔다. 중간중간 목이 메어 말을 멈췄다.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고 코에서는 콧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더니 또 같은 말을 했다. “부탁하자. 기사 쓰지 마라. 죽느냐 사느냐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온 날이야. 오늘은 내가 용서가 안돼. 슬픈 날이야.”
박 부회장은 전화를 받느라 화장실 쪽으로 갔다. 그 사이 의사 친구와 얘기를 나눴다. 박 부회장 장모를 치료한 인연으로 친구로 지낸다고 했다. 박 부회장 건강에 대해서는 지금은 괜찮은 편인데 스트레스가 심해 걱정스럽다고 했다.
박 부회장은 자리로 돌아와 대뜸 질문을 했다.
“내가 욕심 부린 거 봤냐? 아니잖아. 회사 목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리고 싶었어. 사람 목숨만큼 중요한 게 기업 목숨이야. 팬택은 기업사적으로 봐도 의미 있는 회사야. 삼성 LG와 싸워서 가는 줄 알았는데 다시 일어나고. 새 시대에 맞는 제품 만들어서 2등 했다는 건 의미 있잖아. 말하기는 쉬워. 하지만 기업가로서 기업을 완성하는 건 쉽지 않아. 물어보고 싶어. 기업에서 최고의 물건을 만들려고 끝까지 노력해 봤냐고. 피를 토해 봤냐고. 울어 봤냐고. 나를 던져서라도 기업만큼은…. 내 구성원들만큼은…. 마시자.”
여전히 독백 같았다. 고개를 숙인 채 때로는 큰 소리로, 때로는 속삭이듯 얘기를 이어갔다. “울어 봤냐고”라고 외칠 무렵부터는 옛일이 생각났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부인과 누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열심히 살았어. 4, 5년 동안 사람들 안 만나고 죽어라고 했어. 내가 이렇게 안 하면 누가 우리 회사 살리겠어. 그런데… 그러면 안돼. 삼성 LG와 맞짱뜬 기업한테, 세계에서 경쟁력 인정받은 기업한테 그러면 안돼. 왜 삼성이어야만 하고 LG여야만 하고 현대여야만 해? 좌절을 느꼈어. 온몸으로 이건 아니라고 항거하는 방법은…. 내가 나를 내던지는 것밖에 없었어. 필요없어. 스톡옵션 같은 거 필요없어. 우리 구성원들 슬프게 하면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온몸으로 저항할 거야. 말도 안돼. 대한민국에서는 할아버지 잘 만나지 않으면 기업 못하는 거냐? 그런 거야? 말도 안돼. 우리 회사 구성원들한테 약속 지켜야 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광파라, 왜 왔냐?”
박 부회장이 화장실 다녀오는 동안 부인이 한마디 했다. “몇 년째, 몇 달째 너무 너무 힘드셨어요.”
박 부회장은 자리로 돌아와 잔을 비우고 다시 입을 열었다.
“세상 어떤 나라에서 이렇게까지 경쟁력 요구하냐. 나 작업당한 거 알잖아. 조사받은 것 알잖아. 세무조사 많이 받았고 검찰 조사 많이 받은 거 알잖아. 그래도 여기까지 왔어. LG 제치고 삼성이 두려워하는 기업 만들었어. 그렇게 왔는데… 막판에… 그러면 안돼.”
박 부회장이 얘기하는 동안 밖에서 대리운전사가 자꾸 채근했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가 넘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었다. 언제 돌아올 거냐고. 빨리 돌아오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순간 박 부회장이 와락 껴안았다. “광파라, 부탁한다. 쓰지 마.” 물을 수가 없었다. 언제 돌아올 거냐고 묻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손을 꼭 잡아주고 집을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파주=김광현/조귀동 기자 khkim@hankyung.com
박 부회장은 현재는 팬택과 무관한 일을 하고 있다. 물류회사를 설립해 조용히 키워가고 있다. 매출 1천억원대는 이미 돌파했고 흑자도 쏠쏠히 내고 있는 것으로 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