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 스타트업에 관한 자료를 보다가 눈에 띈 스라이드 3장만 발췌해서 공유한다. 중국 선전에 있는 하드웨어 액셀러레이터 핵스(HAX)가 만든 하드웨어 트렌드 2017 슬라이드 자료와 이에 관한 벤처비트 기사에 포함된 그래픽 한 장이다.
1) 하드웨어 유니콘 18개 중 11개가 중국 스타트업
하드웨어 유니콘이 18개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미국 스타트업이 6개, 프랑스 스타트업이 1개이고 나머지 11개는 중국 스타트업이다. 중국을 “세계의 공장”이라고 하더니… 미국 하드웨어 유니콘 중에는 ‘조랑말'이란 혹평을 듣는 매직리프도 포함돼 있다. 중국 하드웨어 유니콘으로는 드론 세계 1위 기업인 DJI를 비롯해 전자제품 가격파괴를 주도해온 샤오미, 자전거 공유 서비스로 돌풍을 일으킨 모바이크도 있다.
2) 산업용 로봇은 ‘아직은’ 일본이 지배한다
산업용 로봇 시장은 일본 기업들이 꽉 잡고 있다. 화낙, 야스카와, 가와사키 등등. 상위 9개 기업 중 1위 화낙, 2위 야스카와를 포함해 일본 기업이 7개나 된다. 나머지 2개는 스웨덴 ABB와 중국 쿠카다. 한국 공장에 도입된 산업용 로봇이 대부분 일본산이란 점을 감안하면 수긍이 간다. 이 슬라이드를 유심히 보면 눈에 띄는 단어가 있다. ‘SO FAR’이다. ‘아직까지는’ 일본 기업들이 지배하고 있지만… 그 다음은 뭔가? ‘언젠가는 중국 기업들이 잡게 될 것’이라는 말이 생략된 게 아닌가 싶다.
3) 한국은 산업용 로봇을 가장 많이 도입한 나라
한국이 산업용 로봇을 가장 많이 도입한 국가라고 한다. 직원 10,000명 당 531대나 된다. 2, 3위 일본 독일보다 월등히 많고, 4위 미국의 3배에 달하고, 중국의 10배가 넘는다. 로봇을 이렇게나 많이 도입했나? 싶다. 과정은 이해한다. 90년대 후반부터 노동운동이 확산되고 임금 인상 속도가 빨라지자 기업들은 ‘공장자동화'를 서둘렀다. ‘블루컬러 기피’ 현상까지 겹치면서 로봇으로 대체하는 공장이 늘었지 않나 싶다.
이 세 장의 슬라이드를 보면서 답답함을 느낀다. 하드웨어 유니콘은 중국이 가장 많고, 산업용 로봇은 일본이 가장 많이 만들고, 한국은… 하드웨어 유니콘은 커녕 하드웨어 스타트업 자체가 드문 실정이다. 열기가 약하다. 점자 스마트시계를 만든 닷(Dot)도 있고, N15을 비롯한 하드웨어 액셀러레이터들이 ‘하드웨어 르네상스'를 꿈꾸며 열심히 뛰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창업지원센터 디캠프(D.CAMP)를 거쳐간 직토, 엔씽, 이놈들연구소 등도 아직은 ‘데쓰밸리(Death Valley, 죽음의 계곡)’을 넘었다고 보긴 어렵다.
굳이 ‘하드웨어'로 국한해서 문제를 보고 싶진 않다. 좀체 유니콘이 나오지 않는 상황을 염려해야 하고, 유니콘이 나올 수 있게 제반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 투자자 짐 로저스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더이상 다이나믹 코리아가 아니다”, “젊은이들이 공무원 준비만 하는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맞는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비법은 어디에도 없다. 한두 사람이 애쓴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아이 하나를 제대로 키우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스타트업 하나 제대로 키우려면 창업계가 모두 나서야 하고, 창업을 통해 산업경쟁력 국가경쟁력을 강화할 요량이면 온 국민이 나서야 한다. 부모는 자식을 공무원이나 의사, 판/검사 만들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하고, 대학은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를 제대로 배출해야 하고, 공무원은 규제를 움켜쥐고 갑질하는 버릇을 바꿔야 하고... 말하자면 끝이 없다. 나부터 잘해야 하고 나만 잘하면 된다. 잘 되리라 믿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