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주도하는 미국 테크 기업 대부분을 ‘이민자’들이 설립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기업가치 세계 1위인 애플은 물론이고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테슬라 등이 모두 이민자 후손이나 이민자가 설립한 기업이다. 미국 이민자 테크 기업들의 가치가 3조 달러(약 3377조원)에 달한다는 기사도 나왔다. 기업가치 상위 25개 미국 테크 기업 중 거의 절반이 ‘이민자 기업’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몇 개만 예를 들자면…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
머스크는 197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국계, 어머니는 캐나다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어머니 나라인 캐나다로 가서 퀸스칼리지를 다녔고, 미국 동부 펜실베니아대학교에 편입해 물리학과 경제학을 복수전공했다. 이어 서부에 있는 스탠포드 박사과정에 입학했으나 이틀만에 그만두고 집투(Zip2)를 설립했다. 이 집투를 매각한 돈으로 엑스닷컴(나중에 페이팔과 합병)을 설립했고, 이 회사를 매각할 때 받은 돈으로 스페이스X를 설립하고 테슬라, 솔라시티 등에 투자해 대주주가 됐다. 솔라시티를 테슬라에 합병해 현재는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이끌고 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저커버그는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계 유대인 후손으로 1984년 뉴욕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치과의사, 어머니는 정신과의사. 유대인으로 키워졌고 한때는 무신론자로 알려졌으나 올해 하버드 졸업연설에서 “종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2004년 하버드 기숙사에서 페이스북을 창업했고, 2012년 중국-베트남계 프리쉴라 첸과 결혼했다. 저커버그는 올해 초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조상에 대해 밝혔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 출신이고, 프리쉴라의 부모님은 중국 베트남 이민자이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다. 우리는 이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구글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래리 페이지는 1973년 미시간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미시간대 교수로 컴퓨터 사이언스와 인공지능 선구자였고, 어머니는 대학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강사로 일했다. 어머니는 유대인. 어린 시절 컴퓨터, 과학기술 잡지가 뒹구는 집에서 자랐다. 열두 살 때 니콜라스 테슬라 전기를 읽고 울었다. 스탠포드 대학원 시절 구글 검색 알고리즘인 ‘페이지랭크'를 개발했고 1998년 세르게이 브린과 함께 구글을 창업했다.
세르게이 브린은 1973년 소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수학자였는데 소련의 반 유대인 정책으로 인해 좋은 직장을 찾기 어려워 미국으로 이민했다. 세르게이가 여섯 살 때였다. 세르게이는 열일곱 살 때 아버지와 함께 모스크바를 방문했는데 그때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에서 탈출시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세르게이는 아버지 할아버지처럼 수학을 공부했다. 스탠포드 박사과정 때 래리 페이지를 만나 구글을 공동창업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
베조스는 1964년 뉴멕시코주 앨비커키에서 태어났다. 엄밀히 말하면 이민자 아들은 아니다. 베조스의 부모는 고등학생 때 ‘사고'를 쳐서 베조스를 임신했고 출산 직전에 결혼했다. 그때 아버지는 18세, 어머니는 17세였다. 이들은 결혼 17개월만에 이혼했다. 베조스의 어머니는 4년 후 쿠바 이민자 미구엘 베조스와 재혼했다. 미구엘은 15세 때 쿠바를 탈출한 이민자로 제프를 아들로 받아줬고 성씨를 베조스로 바꿔줬다. 베조스의 생부는 2013년까지도 아마존 창업자가 자기 아들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다. 기자에게 “나는 좋은 애비도 아니었고 좋은 남편도 아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의 탄생 비화는 널리 알려졌다. 생부 존 잔달리는 시리아인이었고 아랍 무슬림이었다. 레바논 베이루트대학 다닐 때는 반정부 시위를 벌여 감옥형을 받기도 했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던 중 스위스 독일계 후손인 캐롤 쉬블을 만났다. 동갑내기. 잔달리는 쉬블이 수강하는 과목의 조교였다. 쉬블은 혼전임신을 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잔달리와 결혼하지 못했고 아들을 낳자마자 입양 보냈다. 이 아들이 바로 스티브 잡스다. 양부는 폴 잡스, 양모는 이민자 후손인 클라라 해고피안. 잡스는 양부모에 대해 “그분들은 1000% 제 부모님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까지. 미국에는 이들 외에도 이민자 출신 테크 기업인이 수두룩하다. 새삼스럽게 이민자 출신 미국 테크 기업인들을 훑어본 데는 이유가 있다. 어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매우 심한 인종차별 글을 봤다. 방글라데시나 파키스탄 같은 ‘거지 같은' 나라 유학생들을 왜 돈 줘 가면서 들여오느냐, ‘사회문제’라고 생각한다는 글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반박 댓글을 달았지만(참고), 우리의 인종차별이 너무 심하다. 이것 시정하지 않고는 “4차산업혁명" 백날 떠들어도 ‘존경받는 선진국’은 될 수 없다.
한두 해 전 스타트업 대표한테 들은 얘기다. 아주 유능한 베트남 엔지니어를 CTO로 영입했다. 삼성전자가 애지중지했던 엔지니어다. 국제수학경진대회에서 두 차례나 우승했던 천재, 한국 학생(현재 서울대 수학과 교수)이 2등 할 때 1등 했던 천재. 이 엔지니어를 영입한 뒤 매우 만족했는데 어느날 “한국 떠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단다. 초등학생 아이가 학교에서 너무 놀림을 당해 견딜 수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웃 중국이 강국으로 떠오르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먹고 살 수 있을까? 소수정예로 날카롭게 치고 나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게 하려면 국적 따지지 말고 우수한 인재들이 베이징이나 상하이 대신 서울로 몰리게 해야 하고, 이들이 창업한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코스닥에 상장하게 해야 할 텐데… 인종차별하는 나라로 인재들이 몰릴까. 제발 그러지 말자. 트럼프한테 욕하지 말고 우리부터 그런 짓 하지 말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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