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가 최근 로봇 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한다고 발표한 직후 갑자기 전에 썼던 글이 읽고 싶어졌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2011년 6월2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했던 기자간담회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그때 손 회장은 30년 후, 300년 후에 관해 얘기했다. 매우 감명 깊게 들었다. 한국에 손정의가 없는 게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옛 블로그가 폭파된 바람에 그 글을 읽지 못해 아쉬웠는데 구글드라이브를 정리하다 보니 백업 파일이 있다. 당시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조금 줄여서 공유한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어제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외환위기 직후 한국 기자들 앞에 선 이후 11년만이라고 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참석했다가 큰 감명을 받았다. 손 회장은 한 시간 동안 100쪽에 가까운 자료를 넘기며 얘기했다. 일본 도호꾸 대지진 후 두 달 동안 고민했다, 소프트뱅크가 앞으로 무얼 해야 하나,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고 했다. 30년 후, 300년 후 얘기를 했다.
“보다폰재팬 인수할 땐 모든 것을 걸었다”
2006년 2조엔을 들여 보다폰 일본법인을 인수해 모바일 분야에 진출했다. 침몰하는 배에 탄 격이라고 혹평하는 이도 있었다. 사흘 동안 주가가 30%나 곤두박질했다. 이익이 급감하는 기업을 인수했으니 적자를 모면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보다폰재팬 인수 후 소프트뱅크 이익은 급격히 늘었다. 지금은 호감도 1위 기업이 됐다. 아이폰 도입에 힘입어 비약적으로 가입자가 늘어났다. 인수 전에는 가입자 변화가 거의 없었는데 인수 후 급증했다.
“오리엔탈 특급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15년 전에는 미국에서 인터넷 회사에 적극 투자했다, 10년 전에는 일본에서, 5년 전에는 중국에서 적극 투자했다. 투자한 회사들이 급성장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전자상거래, 포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동영상 서비스 업체 등에 투자했다. 한국에서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127개 기업에 2억3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앞으로도 계속 투자할 것이다. 한국의 선진적인 기업들과 보다 적극적으로 제휴할 것이다.
최근에는 KT와 손을 잡고 데이터센터 서비스를 개시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본은 대지진 후 전력이 부족하다. KT 지원을 받아 데이터센터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려고 한다. 한국 일본 중국… 아시아 국가에서 사업을 적극 전개하려고 한다. 이것이 우리가 추진하는 오리엔탈 특급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일본 중국 한국의 인터넷 회사들이 아시아 여러 나라로 진출하는 것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대지진으로 인생관이 바뀌었다”
소프트뱅크는 창업 이후 정보혁명, 정보기술(IT)에만 집중했다. 3월11일 발생한 대지진이 내 인생관까지 뒤흔들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회사란 무엇인가, 보람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됐다. 지진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일본은 지금 발전 능력이 반으로 줄었다. 창업 이후 정보혁명에 인생을 바치겠다고 했고 이 비전과 철학을 실천해 많은 이익을 내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겠는가. 내가 내 기업만 잘 꾸리면 되겠는가 생각했다. 2개월 고민 끝에 정보혁명도 에너지 없이는 이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자연에너지협의회라는 걸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일본에는 47개 광역자치단체가 있는데 34개를 설득해서 이 협의회에 참여하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일본은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원전 사고가 속출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그래서 자연에너지를 추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지진이 덜하니까 훨씬 안전하게 원전을 운영할 수 있겠지만 중대 원전사고는 전부 인재였다. 사람 잘못으로 인해 사고가 일어났다. 이런 사고는 어느 나라에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지진이 없다고 안심해선 안된다. 일본은 지금까지 원자력과 화력을 중심으로 발전을 했는데 자연 에너지를 포함해 에너지 체제를 재편하기로 했다. 소프트뱅크는 신재생 에너지에 관한한 아마추어다. 우리 분야는 아니다. 그러나 인터넷 기술을 활용하면 스마트 그리드 분야에서도 공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보혁명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겠다”
소프트뱅크는 정보혁명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행복이 무엇인가. 슬픔은 무엇인가. 트위터를 자주 사용하는데, 트위터를 시작한 것은 소프트뱅크의 30년 비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의 지혜를 빌리기 위해서였다. 트위터를 통해 가장 슬픈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하루 밤 사이에 2500개 답이 들어왔다. 이걸 분석했다. 가족/친구 등의 죽음, 고독, 절망… 한 단어로 “고독”이었다.
가장 행복한 순간도 물었는데 사랑, 미소,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 공통점을 말하자면 “감동”이었다. 보는 감동, 배우는 감동, 만나는 감동, 사랑하는 감동, 마음이 움직이는 감동…이런 게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소프트뱅크는 정보혁명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철학을 더욱 명확히 갖게 됐다.
소프트뱅크의 300년 성장 DNA
30년 비전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300년 동안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 생각했다. 소프트뱅크는 30년을 걸어왔지만 30년이 아니라 300년 존속하고 계속 성장하는 기업이 되고 싶다는 의미에서 300년 단위로 생각했다. 30년 앞을 내다보기는 쉽지 않다. 이럴 경우엔 차라리 멀리 봐야 한다. 그래서 300년을 생각했다. 그러면 과거 300년은 어땠나. 300년 전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철도 증기기관차 등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기계가 사람들한테 좋은 것인가, 일자리를 뺏어가진 않을까 논의했다. 노동자들은 기계가 일자리를 뺏어간다고 생각해 파괴까지 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기계가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돕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300년 후의 세계… 큰 변화를 맞을 것이다. 현재 모습은 정보 빅뱅의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과거 100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인간은 1초에 0.0000006회 계산할 수 있는 계산기를 발명했다. 지금은 1초에 100억회 계산한다. 100년 동안 계산능력이 3500조배 늘어난 셈이다.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반도체는 0과 1의 2진법을 사용한다. 트랜지스터도 0이냐 1이냐…이다. 이런 역할을 하는 세포가 인간의 뇌에는 300억개가 있다. 트랜지스터가 인간의 뇌를 능가하는 시점을 계산해봤다. 20년 전에 계산했을 땐 2018년이 나왔다. 2년 전 다시 계산해 봤는데 역시 2018년이 나왔다. 트랜지스터의 연산능력은 100년 후에는 10의 20승, 또 100년 후에는 10의 40승, 또 100년 후에는 10의 60승… 이 얼마나 엄청난가. 인간과 아메바의 세포 차이는 300억배다. 300년 후에는 이 차이보다 인간과 칩의 차이가 훨씬 클 것이다. 10의 60승. 인공두뇌.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가장 큰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날 것이다.
패러다임 쉬프트 속에서 인간은 로봇처럼 정해진 일만 할 것인가. 로봇이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세상이 와도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이때가 되면 슈퍼인텔리전트는 엄청난 활약을 할 것이다. 그때 로봇은 지금 로봇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사람들을 재해로부터 구해줄 것이고, 구급의료도 해줄 것이고, 간호도 해줄 것이다. 로봇 종류가 생명체 종류보다 많아질 것이다.
로봇이 인간의 파트너로서 인간을 보다 행복하게 하기 위해 존재할 것이다. 300년 후 기계는 노동자의 적이 될까, 노동자의 편이 될까, 일자리를 뺏을까,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까. 답을 얻었다. 인간보다 지능이 뛰어난 슈퍼인텔리전스를 가진 기계가 인간을 보다 행복하게 하기 위해 공존할 것이다. 인간의 지혜/지식만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해결하는데, 지구를 지키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앞으로 30년간 라이프스타일이 확 바뀐다”
30년 후의 세계는 이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메모리 칩의 용량은 지금의 100만배로 커질 것이다. 통신속도도 300만배 늘어날 것이다. 30년 후 한 대의 스마트폰에 저장할 수 있는 콘텐츠를 보면, 노래는 5000억곡, 신문은 3억년 분량, 영화는 300년 분량… 라이프스타일이 엄청나게 변할 것이다. 무한대의 저장공간, 무한대의 클라우드… 극적인 변화가 생길 것이다. 종이 교과서, 종이 잡지를 읽는다는 것은 시대에 뒤처지는 것이다. 일하는 방식도 철저하게 바뀔 것이다.
“소프트뱅크는 30년 후 ‘톱 10’ 기업이 되고 싶다”
앞으로 30년 또는 300년 동안 소프트뱅크의 전략은 무엇인가.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이 되고 싶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100년 전에는 톱 10 기업 가운데 4개가 철도회사였다. 철 회사, 석탄 회사, 은행, 철도회사… 현재는 철도회사는 하나도 없다. 석탄회사도 없다. 새로 들어온 회사에는 애플도 있고, 중국 회사도 있다. 소프트뱅크는 30년 후 세계 톱 10 회사가 되고 싶다. 200조엔 정도의 시가총액을 예상한다. 도산하지 않고 존속한다는 것 자체만도 대단하다. 일본에서 30년 동안 존속하는 기업은 0.02%밖에 안된다. 99.98%가 사라졌다.
“소프트뱅크 계열사들도 소프트뱅크 브랜드 안쓴다”
300년 동안 지속하고 성장하는 기업. 이런 기업의 DNA를 어떻게 설계할까. 20세기형 기업은 하나의 브랜드를 유지했고 진화 속도도 느렸다. 21세기형 조직 전략은 멀티 브랜드다. 소프트뱅크는 800개 회사를 거느리고 있고 계속 늘리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이들한테 ‘소프트뱅크’란 브랜드를 허용하지 않는다. 미쓰비시의 경우 자동차, 은행, 무역, 화학 등 여러 자회사들이 “미쓰비시”란 브랜드를 쓴다. 삼성도 삼성 삼성 삼성… 싱글 브랜드로 큰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그렇지 않다. 브랜드가 각기 다르다. 소프트뱅크 브랜드를 허용하는 기업은 내가 CEO를 맡고 있는 몇 개 회사 뿐이다. 나머지 800개는 소프트뱅크 브랜드를 쓰지 못하게 하고 있다. 왜냐? 그렇게 해야 의사결정이 빠르고 피라미드 형태의 중앙집권을 피할 수 있다. 인터넷은 스피드 경쟁이다. 수많은 기업이 인수되고 망하는데…소프트뱅크 브랜드 붙이면 이걸 지키기 위해 중앙집권을 하게 되고 새로운 투자도 통제해야 하고… 모든 의사결정이 늦어진다. 그래서 소프트뱅크 브랜드를 붙이지 않는다. 따라서 중앙집권적인 통제를 받지 않아도 된다. 보다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각각의 회사가 자율적이고 상하관계가 아니라 파트너적인 관계, 수평적인 관계가 된다. 소프트뱅크 조직은 월드와이드웹처럼 각각의 회사가 연계하면서 발전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멀티 브랜드, 멀티 헤드쿼터, 멀티 CEO… 이런 식이다. 세계에서 처음 만들어진 조직체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열아홉살 때 세운 50년 인생계획대로 하고 있다”
소프트뱅크 회사는 현재는 800개이다. 30년 전 1개였는데 지금은 800개다. 이 800개가 30년 후에는 5000개로 늘어날 것이다. 5000개 시너지 그룹, 멀티 비즈니스 모델… 나는 19살 때 인생 50년 계획을 세웠다. 20대에 이름을 떨치고 30대에 운영자금을 마련하고, 40대에 승부를 걸고, 50대에는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하고, 60대에 다음 경영자에게 바턴을 넘겨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이 계획대로 했다. 48세 때는 큰 승부를 걸었다. 2조엔을 들여 보다폰재팬을 인수했다. 일본경제사에서 가장 큰 인수였다. 현금 인수로는 전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인수였다. 나한테는 인생 최대의 도박이었다. 이것이 성공해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 54세인데 좀더 확실하게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해서 60대에 다음 경영진에게 계승하겠다.
“경쟁을 통해 후계자를 선정할 것이다”
갑자기 승계하는 게 아니다. 작년에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라는 학교를 열었다. 일반사원들을 교육하기 위한 곳이 아니다. 내 후계자, 한 사람의 인간을 발견해서 육성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한 사람의 후계자를 만들기 위해 300명이 지금 공부하고 있다. 20대, 30대, 40대… 2만명 사원 중 1% 200명을 선정했다. 외부에서도 100명을 모았다. 트위터를 통해 모집했는데 1만명이 응모해 이 가운데 100명을 선정했다. 300명 중에서 한 명이 내 후계자가 된다. 나머지는 낙오자가 되는 게 아니다. 5000개로 늘어날 소프트뱅크 회사들의 CEO도 되고 CFO도 되고 COO도 될 것이다.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는 6개월에 한 번 최하위 20% 정도를 퇴출시키고 새로 충원한다. 6개월마다 새로운 인력을 넣어 엄격하게 교육하고 있다.
“정보혁명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
소프트뱅크는 현재 세계 200대 기업 정도 된다. 30년 후 톱 10에 드는 게 목표인데 큰 도전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정보혁명을 추진할 것이다. 정보혁명의 새로운 테마로 최근에는 에너지 혁명이란 걸 더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는 정보혁명이다. 이걸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