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테슬라, 스티브 잡스, 그리고 래리 페이지.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뭘까요?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최근 유례없이 긴 글을 사이트에 올렸습니다. 200자 원고지로 계산한다면 300장, 400장은 될 듯 합니다. 구글 창업자/CEO인 래리 페이지에 관한 글인데 매우 잘 썼습니다. 이 글의 첫 부분은 세 사람을 비교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아시다시피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쫓겨나 13년쯤 ‘야인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넥스트를 세워 교육용 컴퓨터를 개발했고 픽사에 사실상 ‘올인' 했다가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가 뜨면서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부도 위기에 몰린 애플에 복귀해 회사를 살렸고,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내놓아 세상을 바꿨습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개발할 무렵엔 췌장암에 걸려 투병 중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죠.
천재 발명가 니콜라스 테슬라에 대해서도 많이들 알고 계실 겁니다.
세르비아계 이민자. 8개 언어 능통. ‘사진기'라고 할 만큼 뛰어난 기억력. 토마스 에디슨 밑에서 발전기를 좀더 효율적으로 돌리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하죠. 그런데 프로젝트 종료 후 에디슨이 약속했던 5만 달러를 주지 않고 주급을 10달러 올려주는 것으로 끝내려 하자 회사를 그만두고 테슬라전기를 설립. 그러나 투자자들과 의견이 엇갈려 쫓겨났다고 합니다. 자기가 세운 회사에서 쫓겨났다는 점에서는 스티브 잡스와 비슷하네요.
테슬라는 1900년에 JP모건을 설득해 15만 달러를 투자받아 새 회사를 세웠으나 이듬해 돈이 떨어졌고 JP모건은 더이상 돈을 대주지 않았습니다. 말년에는 연금으로 연명하고 비둘기 모이 주는 것으로 소일. 1943년 1월 뉴욕 호텔 방에서 사망. 방 문에 '방해하지 마세요(Do not Disturb)' 팻말이 걸려 있어 하루가 지난 뒤에야 발견됐습니다. 테슬라의 불행한 삶은 친구뉴욕헤럴드트리뷴 기자가 1944년 전기를 써내면서 알려졌습니다.
41년 후 열두 살 소년이 이 전기를 읽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래리 페이지입니다.
세르비아계 이민자. 8개 언어 능통. ‘사진기'라고 할 만큼 뛰어난 기억력. 토마스 에디슨 밑에서 발전기를 좀더 효율적으로 돌리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하죠. 그런데 프로젝트 종료 후 에디슨이 약속했던 5만 달러를 주지 않고 주급을 10달러 올려주는 것으로 끝내려 하자 회사를 그만두고 테슬라전기를 설립. 그러나 투자자들과 의견이 엇갈려 쫓겨났다고 합니다. 자기가 세운 회사에서 쫓겨났다는 점에서는 스티브 잡스와 비슷하네요.
테슬라는 1900년에 JP모건을 설득해 15만 달러를 투자받아 새 회사를 세웠으나 이듬해 돈이 떨어졌고 JP모건은 더이상 돈을 대주지 않았습니다. 말년에는 연금으로 연명하고 비둘기 모이 주는 것으로 소일. 1943년 1월 뉴욕 호텔 방에서 사망. 방 문에 '방해하지 마세요(Do not Disturb)' 팻말이 걸려 있어 하루가 지난 뒤에야 발견됐습니다. 테슬라의 불행한 삶은 친구뉴욕헤럴드트리뷴 기자가 1944년 전기를 써내면서 알려졌습니다.
41년 후 열두 살 소년이 이 전기를 읽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래리 페이지입니다.
아시다시피 래리 페이지는 스탠포드대학교 박사과정 재학 중 검색 알고리즘을 개발해 세르게이 브린과 함께 구글을 설립했습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 글을 보면 페이지도 창업 초기에 힘든 경험을 했습니다. 페이지는 회사가 커지면서 자신과 개발자들 사이에 관리자들이 개입하는 게 싫었던가 봅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관리자가 방해만 된다고 본 것이죠.
페이지는 어느 날 직원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자리에서 관리자들을 모두 해고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아무런 통보도 없이 불쑥 해고를 공표한 겁니다. 물론 반발이 심했죠. 결국 관리자들을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것으로 타협을 했습니다. 투자자들이 에릭 슈미트를 데려와 ‘10년 섭정’을 하게 한 것도 미덥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슈미트는 10년 동안 구글 CEO를 맡아 기반을 다졌습니다. 페이지는 10년 후인 2012년 4월 구글 CEO에 복귀했습니다. 이제 2년이 갓 지났습니다. 이 짧은 기간에 구글+ 런칭, 구글 서비스 통합, 구글글라스 공개, 안드로이드 에코시스템 확장 등을 추진했고, 특허 전쟁에 대비해 모토로라를 샀다가 중국 레노버에 팔아넘겼습니다.
래리 페이지가 슈미트의 10년 섭정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테슬라처럼 회사 말아먹고 투자자들한테 돈 달라고 징징대고 있을까요? 비즈니스 인사이더 기자는 그럴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야인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단점을 보완했기에 애플 복귀 후 아이폰을 내놓아 세상을 바꿨습니다.
페이지도 10년 섭정을 거쳤기에 인간적으로 성숙했고 CEO 복귀 후 구글을 제대로 키워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페이지의 경우 단정적으로 말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1973년생, 한국 나이로 마흔두 살. 구글이 현재 안드로이드와 크롬으로 모바일과 웹 혁신을 주도하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상황에 처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래리 페이지를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났던 두 천재와 비교한 것은 아주 재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페이지가 잡스처럼 혁신적인 제품을 잇따라 내놓아 세상을 바꿔 놓을 수도 있다, 10년 담금질이 부족했다면 테슬라처럼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은데, 비즈니스 인사이더 글을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래리 페이지는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CEO)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고 봅니다. 선천적으로 목이 좋지 않고 다소 수줍음을 타는 탓에 대중 앞에 자주 서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10년 동안 에릭 슈미트 그늘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테고요. 대단한 선수이긴 한데, 생존인물에 대한 평가는 늘 조심스럽습니다. [광파리]
래리 페이지는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CEO)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고 봅니다. 선천적으로 목이 좋지 않고 다소 수줍음을 타는 탓에 대중 앞에 자주 서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10년 동안 에릭 슈미트 그늘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테고요. 대단한 선수이긴 한데, 생존인물에 대한 평가는 늘 조심스럽습니다. [광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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